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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의 벽

등록 2016-09-07 19:11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조일연 선생님과 인연을 맺은 지 9년쯤 됐다. 그는 농아인(청각장애인)들이 다니는 충북 충주 성심학교 교감을 지냈다. 대학 때 특수교육을 전공한 조 선생님은 1983년 이 학교에 부임해 24년10개월 동안 아이들을 가르쳤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14년 전 “야구부를 만듭니다” </font></font>

그는 학교에서 교감이자 야구감독이었다. 야구로 유명한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를 졸업했을 뿐, 야구와 별 인연이 없었다. 살짝 배가 나온 듯하고, 둥글둥글한 얼굴에 안경을 살포시 얹은 인자한 표정에도 어딘가 ‘야구감독스러운’ 데는 없다. 그러나 그는 2002년 4월15일 학교에 ‘야구선수 모집공고’를 냈다. “우리 성심학교는 야구부를 만듭니다. 그래서 선수를 모집합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학생들은 4월30일까지 이름을 적어내세요. 누구에게? 중3 박대순에게 내세요. 교감선생님 씀.”

그는 야구감독을 자처한 까닭에 대해 ‘열 살의 벽’과 ‘보상 감각’을 말했다. “청각장애인의 경우, 들리지 않는 ‘말’을 배우기 어려워요. ‘열 살의 벽’이란 청각장애인들이 성인이 되어도 학업성취도에서 비장애인 열 살 수준의 벽을 뛰어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조 선생님은 ‘열 살의 벽’을 깨부술 방법을 고민했다. 그는 아이들의 ‘보상 감각’을 믿었다. 시각장애인들이 시각 대신 청각·촉각이 예민하게 발달하는 경우로 ‘보상 감각’을 설명할 수 있다. 그는 청각장애를 지닌 제자들의 보상 감각을 살리고 싶었다. “고전영화 을 보면 ‘마리아야, 걱정 말거라. 하느님이 한쪽 문을 닫으실 때 또 다른 문 한쪽은 꼭 열어놓으신단다’라는 대사가 나와요. 그런 기회가 우리 아이들에게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스포츠라면 어떨까? 그중에서도 말 대신 손짓·발짓으로 보내는 ‘사인’으로 경기를 진행하는 야구라면 소리를 잃은 아이들도 도전해볼 수 있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성심학교에 ‘야구선수 모집공고’가 난 뒤 14년이 흘렀다. 국내에 성인 청각장애 사회인 야구팀이 15개나 생겼다. 한때 고양 원더스에서 프로 진출을 꿈꿨던 박병우, 지금 야구 명문 덕수고(옛 덕수상고)에서 뛰는 임정우가 청각장애를 딛고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조 선생님은 2018년 첫 세계농아인야구대회도 준비하고 있다. 북미에서 미국·멕시코·쿠바·베네수엘라 등 5개국, 아시아에서 한국을 비롯한 5개국 등 모두 10개 팀이 출전하겠다고 응답해왔다. 비용 문제 때문에 10년 가까이 벼르고만 있던 일이다. 한 지방자치단체와 몇몇 회사들이 스폰서로 나설 뜻을 비췄다고 한다. 그는 “올림픽 뒤 패럴림픽을 하는 것처럼, 세계야구클래식(WBC) 뒤 세계농아인야구대회를 개최할 계획으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사무국과도 협상하고 있다. 내가 움직일 수 있을 때 지속 가능한 농아인대회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만약 이길 수 없더라도</font></font>

문득 조 선생님이 떠오른 것은 올림픽 때문이다. 8월22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비장애인 올림픽’이 끝났다. 9월7일부터 같은 장소에서 ‘장애인 올림픽’(패럴림픽)이 시작된다. 장애를 딛고, ‘열 살의 벽’ 혹은 ‘스무 살의 벽’을 깨부숴온 이들이 모여 축제처럼 열전을 치른다. 장애인들에게는 패럴림픽 외에 4년마다 한 번씩 농아인들이 겨루는 ‘데플림픽’이 있다. 내년 터키에서 대회가 열린다. 지적발달장애인들이 출전하는 스페셜올림픽도 있다. 이 대회는 1·2·3등에게 메달을, 다른 모든 참가자들에게는 리본을 달아준다. 스페셜올림픽 선수 선언은 이렇다. “나는 승리합니다. 그러나 만약 이길 수 없더라도, 용기를 잃지 않고 도전하겠습니다.”(Let me win. But if I cannot win, let me be brave in the attempt.)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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