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도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하다. 화폐로는 가난했을지언정 식탁은 가난하지 않았다. ‘식당 찬모’의 아들로 자라서 지역 생활공동체 활동가로 사는 저자가 물려받은 것은 가난이 아니라 자신감이다. “결국 요리의 첫발은 함께 먹을 누군가를 책임질 만큼의 용기를 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충북 청주의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활동가 박영길씨의 에 나오는 요리의 이유다. 어머니의 칼국수와 아버지의 돼지고기두루치기가 자극하는 가난했지만 풍요로웠던 기억이 그를 공동체의 부엌으로 밀어갔다.
소농의 식탁 같은 요리법
<요리활동> 박영길 지음, 포도밭출판사 펴냄, 1만2천원
요리사가 직업이 아니다. 책갈피에 적힌 ‘박영길’은 이렇다. “공룡의 서류상 대표이자 주방 담당”인 그는 “밤에는 사회적기업 ‘삶과 환경’의 수거원으로 일한다.” 공부방 교사 출신으로 지금도 “청소년 인문학 수업을 맡고 있”다. 은 부모님이 물려준 밥상의 추억에서 시작해 ‘밥상공동체’ 공룡에 같이하거나 들렀던 이들을 요리로 환대한 추억을 담았다. ‘칼국수’부터 ‘물 마리니에르’를 거쳐 ‘꽃게’까지 이어지는 47편의 에세이는 각각 사람(들)에 대한 얘기다. 여기에 그와 얽힌 간단 레시피가 담겼다.
“~면 그만이다.”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를 말하거나 조리법을 설명할 때 자주 나오는 말이다. 그에게 요리란 목적이 아니다. 오직 음식을 먹을 그대를 위한 것이어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 따위는 없다. 그가, 우리가, 지금 여기서 절실한 것들만 넣으면 된다. 흔한 재료를 쓰거나 있는 양념에 약간의 고민을 곁들여 뚝딱뚝딱 만들면 그만이다. 그의 요리법은 한정된 텃밭의 재료로 최대치의 풍요를 끌어내던 소농의 식탁 같다.
잘 먹고 산다고 소문이 났지만, 공룡의 일상은 무밥이 대표한다. “그저 무를 채 썰어서 씻은 쌀 위에 올려놓고 밥을 하는 것이 다인 요리”이지만, “몇 가지 전제가 있다”고 한다. “보관하면 밥이 변색되고 쉽게 상해버리는” “무밥은 많은 사람이 한 끼에 맛나게 먹기 좋은 요리다”. 함께 먹는 ‘밥심’이 중심에 있지만, 서로 다른 입맛을 죽이진 않는다. 무밥에 곁들이는 간장양념에 배려를 담는다. “매운 것을 좋아하는 혜린을 위해서 청양고추를 다져 넣을 수도 있고, 상큼한 것을 좋아하는 설해를 위해서 깻잎을 다져 넣어 풍미를 자극”하는 식이다. 그런 마음으로 공동체를 위로하고, 지역과 연결되는 것이 박영길식 요리활동이다.
때로 특별한 음식을 만들지만, 달리 특별한 반응을 기대하진 않는다. 여성의 날, 투쟁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를 초청해 프랑스식 해물탕 ‘부야베스’를 만들어 대접하고 난 다음에 느낀 생각은 이렇다. “특별한 맛이라고 평가해주긴 했으나 익숙한 맛이 아니라 그런지 엄청 좋아하진 않았다.” 요리에 대해 안달복달하지 않는 마음은 음식 만들기를 어려워하는 공룡 활동가를 보면서도 나온다. “언제나 불친절한 나는 긴장하지 않고 기본대로만 하면 아무 일도 안 생긴다며 옆에서 투덜거렸다. 솔직히 요리라는 게 망치면 다시 하면 되지, 망친다고 무슨 큰일이 일어나겠는가?”
지속 가능한 요리활동을 위하여요리를 신성시하지 않으면서, 요리를 신성한 것으로 만드는 ‘박영길식 레시피’는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사는 거 별거 없어요. 요리도 별거 아니에요. 다만 누군가를 책임질 용기를 내서 마음을 슬쩍 살핀 다음 뚝딱뚝딱 만드세요.’ 그의 요리와 운동이 지속 가능한 이유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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