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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라면 까’를 까자

지금 이 자리, ‘일자리 인권’을 위한 책 <일터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
등록 2016-07-29 18:13 수정 2020-05-03 04:28

다음 중 ‘일터괴롭힘’에 해당하는 행위는?
● 공개적인 자리에서 다른 직원과 비교하며 실적 부진을 질책하는 행위
● 불가능한 데드라인을 요구하는 등 비합리적으로 업무 시간을 설정하는 행위
● ‘회식도 일의 연장이다!’라며 늦은 시간까지 쉬지 못하도록 하는 행위
‘문제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일터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 류은숙·서선영·이종희 지음, 코난북스 펴냄, 1만5천원

<일터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 류은숙·서선영·이종희 지음, 코난북스 펴냄, 1만5천원

국내외 전문가들에 따르면 모두 ‘일터괴롭힘’(workplace harassment)의 유형과 사례에 포함된다. 물론 행위의 지속·의도성, 위계서열 등 추가로 고려해야 할 요소가 있긴 하다. 비합리적인 행위 하나가 곧바로 일터괴롭힘은 아니라는 것. 하지만 한 번의 행위라도 일단 벌어지면 향후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소홀히 할 순 없단다.

‘일터괴롭힘’이란 말에서 신체 폭력, 폭언 등만 떠올렸다면 이런 사례는 의외일 테다. 또 ‘프로불편러’ ‘무능력자’ ‘정신이 나약해빠진’ 사람이나 이런 행위를 괴로워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의외성’과 ‘문제적 개인’에게 책임을 귀속시키는 편견이야말로 일터괴롭힘 연구의 탄생 배경이자 존재 이유다.

일터괴롭힘 연구의 선구지인 북유럽에서부터 피해자의 ‘심리적 고통’을 개념화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피해자가 ‘마침내’ 건강 혹은 일자리를 잃은 상황은 일터괴롭힘의 ‘결과’다. 늦다. 예방과 개입을 위해서는 발생부터 결말까지 메커니즘을 정교하게 살펴야 한다. 은 이런 일터괴롭힘의 개념과 메커니즘을 국내외 연구, 사례, 법·제도, 실무 가이드라인 등으로 정리한 개론서다.

실업난 탓에 ‘괴롭힘이라도 당해봤으면 좋겠다’는 사람들, 사실상 고용주가 있는데도 ‘사장님’(개인사업자)이 되어야만 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일 터. 이는 연구자들이 ‘직장 내 괴롭힘’ 대신 ‘일터’라는 표현을 채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삶터와 일터가 분리되지 않는 공간과 사람을 중심에 두자는 취지다. 법제화가 이루어진 나라에서도 취업준비생, 연수생, 비정규직을 포괄한다.

‘합리적 경영 및 노동 관리’와 ‘괴롭힘’의 경계 구분 문제도 일터괴롭힘 연구의 주요 과제다. 자본이 법망을 피해 ‘합리성’을 가장한 최신식 괴롭힘을 개발해내는 건 세계적 흐름이다. 이런 구조적·조직적 일터괴롭힘을 실행하는 건 앞자리 상사, 옆자리 동료다. 심지어 ‘나’ 자신이다. 일자리를 언제 잃을지 모르고, 한 번 일자리를 잃으면 재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괴롭힘을 문제제기하는 건 ‘사치’ 같다.

‘말하기’ ‘듣기’를 시작하자

그러나 책은 그런 불안정성이야말로 일터괴롭힘을 가시화하고 문제 삼아야 할 이유라고 말한다. 언제 잃을지 모를 ‘일자리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보다, 어느 일자리에 누가 자리하든 인간 존엄을 해치지 않는 ‘사회적 인권’이 절실하므로. ‘까라면 까’라는 ‘갈굼 문화’에 균열을 낼 일터괴롭힘 피해자와 방관자의 ‘말하기’ ‘듣기’가 필요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자기가 있는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권리를 찾아야 한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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