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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하듯 읽는 ‘문명의 통로’

중국 너머 있는 중앙유라시아 3천 년 역사에 대한 입체적 접근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등록 2016-07-29 18:05 수정 2020-05-03 04:28

고구려 유민 고선지가 이끄는 당군과 지야드 이븐 살리흐의 아랍군은 751년 7월 탈라스 하반의 아틀라후에서 전투를 벌였다. 닷새 동안 대치하던 중 당군의 일부였던 카를룩 유목민들이 배반해 아랍 쪽으로 넘어갔다. 당군은 좌우로 협공당해 참패했다. 고선지는 목숨을 구하기는 했지만 패배에 책임을 지고 절도사직에서 면직됐다.
주목받지 못하던 역사의 복원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김호동 지음, 사계절 펴냄, 2만9800원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김호동 지음, 사계절 펴냄, 2만9800원

이 전투는 당시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타바리를 비롯한 이슬람 쪽 사가들은 거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고, ‘구당서’와 ‘신당서’ 고선지전에도 아무런 언급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탈라스 전투는 장기적으로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이슬람권의 정치·문화적 영향력이 증대하는 분수령이 됐다. 또 탈라스 전투의 패배는 중국 문화가 이슬람 세계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전투에서 생포된 중국인 2만 명에 포함된 제지 기술자들이 이슬람권에 제지술을 전파했다.

중앙유라시아는 문명의 거대한 통로였다. 서쪽으로는 흑해 북방의 초원에서 동쪽으로는 베이징 북쪽 싱안링산맥에 이르는 거대한 대륙인 중앙유라시아는 유목 세력과 농경 세력의 충돌 지점이며, 이슬람과 중국 문명이 교류하는 곳이기도 했다. 탈라스 전투가 남긴 종이의 전달이 좋은 예다.

는 이처럼 거대한 문명사를 담은 중국 너머 3천 년 역사를 소개하는 책이다. 우리에게 중국 너머 대륙은 생소하기 짝이 없다. 흉노·돌궐·투르크·몽골 등 유목민족이 내달렸던 대륙의 역사는 지평선 너머보다 멀어 보인다. 중앙유라시아사 분야의 세계적 석학 김호동 서울대 교수(동양사학)가 3년에 걸쳐 쓴 이 책은 지평선 너머 역사를 입체적으로 우리에게 접근시킨다.

‘흉노의 기원’ ‘몽골제국 출현 전야’ 등 역사에서 중요한 한 장면씩을 잘라 2페이지에 걸쳐 경과와 의미를 설명했고, 직접 그린 지도와 계보도로 이해를 돕는다. 모두 113컷의 지도는 유목민족의 이동과 거주, 민족 간 또는 국가 간 전쟁, 교역 등을 한눈에 들어오게 만든다. 마치 모래에 파묻힌 고대국가의 유적을 발굴하는 것처럼 책을 따라 읽다보면 역사의 장면을 하나씩 넘기며 중앙유라시아를 이해하게 된다.

이를테면 우리가 알고 있는 흉노·몽골 등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흉노·선비·거란·몽골과 같이 중앙유라시아에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유목민들이 하나의 부족 또는 민족이라 생각하면 그건 오해일 것이다. 물론 이들이 원래 조그만 씨족이나 부족의 이름에서 시작된 것은 사실이지만, 초원의 유목민들을 통합해 거대한 국가를 세운 뒤 거기에 편입된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그 이름을 칭했다. 따라서 ‘흉노족’이나 ‘선비족’이 지금 어디 있느냐고 묻는 것은 ‘신라족’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다.”

흉노·선비·몽골은 민족 아니라 국가

몽골 이야기는 특히 자세하다. 칭기즈칸의 세계 정복 전쟁, 승계를 둘러싼 내분, 쿠빌라이의 집권 등으로 만들어진 ‘팍스 몽골리카’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대여행의 시대’를 열었다. 몽골제국 안에서 상인과 사신, 선교사들의 여행은 지리적 지식의 확충을 통해 세계관의 변화를 가져왔고, 서양이 앞장선 15~16세기 ‘대항해 시대’로 연결됐다. 현 세계의 세력 지도는 중앙유라시아의 몽골제국 때부터 그려지기 시작한 셈이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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