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아카데미쿠스. ‘나는 공부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더 좋은 학벌, 부모의 체면, 안정된 직장, 끊임없는 자기계발, 지식 탐구, 즐거움. 배움의 목적은 다양하지만 그 결과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공부가 삶을 풍요롭게 했던가, 삶을 고통스럽게 했던가. 무엇으로 갈렸을까.
여기 공부에서 인생의 재미 또는 의미를 찾은 사람들이 있다.
정혜신의 사람 공부강만길. ‘역사 공부’는 처음부터 그저 좋아하는 일, 재미있는 일이었다. 19살에 시작해 팔순 넘은 지금까지 이어진 그의 역사 공부는 그대로 역사학 역사가 되었다. 일제 식민사학에 맞선 조선 후기의 ‘자본주의 맹아론’, 무미건조한 ‘해방 후 시대’ 역사에 평화통일 염원을 불어넣은 ‘분단시대’ 역사학이 그에게서 나왔다. ‘지금 역사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부단한 성찰과 공부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유시민. “공부가 참 좋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세상과 사람과 인생을 대하는 자신의 생각이나 태도가 달라지는 순간을 체험하는 경우다. 이를테면 이런 순간이다. 춘추전국시대 굴원이라는 사람이 억울하게 삭탈관직으로 내쫓겨 죽으러 가는 길에 썼다는 의 구절을 읽는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 문득 깨닫는다. ‘아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그로부터 4년 뒤 2013년 그는 이 구절을 떠올리며 정치를 그만뒀다. ‘대중이 나를 원하면 정치를 하고 대중이 원치 않으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겠구나.’ 이렇게 삶의 의미를 찾는 공부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타인의 생각과 감정에 젖는 독서와 하루 한 문장은 내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는 글쓰기가 핵심이다.
김영란. 독서는 그에게 ‘쓸모없는 공부’였다. 그런데도 50년 가까이 책, 특히 소설 ‘중독자’로 살았다. 유년 시절부터 그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와 현실을 잊게 해주는 카타르시스에 매료됐다. 심지어 최초 여성 대법관인 그는 판사 생활을 하면서도 “판사라는 직업과 나는 맞지 않다”며 책에 빠졌다. 늘 “내가 책으로 도망가고 있나”라고 고민했다. 그러다 미국 시카고 로스쿨 교수 마사 누스바움의 를 읽고서야 “내가 읽어온 책들이 내게 ‘공감’이라는 훈련을 시켜주어서 내가 판결을 하는 자세에 영향을 줬다”고 받아들였다. 결과적으로 ‘나를 닦는’ 수양의 방편이 되어준 독서가 ‘쓸모없는 공부의 쓸모’였던 셈이다.
정혜신. ‘사람 공부’는 나를 사람에 가깝게 만드는 과정이다. 그래서 10여 년 전 진료실을 나와 거리로 들어갔다. 세월호 참사 이후엔 집에 있던 정신의학 전공서적도 다 치웠다. “선생님, 제가 미친년 아닌가요?”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고 또래 조카가 죽일 듯이 미워졌다는 엄마들에게 말한다. “미치면 어때요. 딸이 갑자기 없어졌는데 잘 지내면 그게 엄마예요?” ‘아이가 없어진 걸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는 정신의학 이론에 반대되는 치유법이었다. 그제야 엄마들은 고통스런 울음을 멈춘다.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것, 그 상황에서 스스로를 통제할 힘이 자신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돕는 것. 사람 공부인 동시에 타인 치유의 시작이다.
새로 공부 시작한 진중권진중권. 새로 시작한 공부가 흥미롭다. 사람들이 문자 대신 이미지와 사운드로 소통하는 시대, 참과 거짓의 구도가 재미와 지루함의 구도로 바뀐 시대에 인문학은 도대체 무얼 해야 하나. 여기서 ‘테크노 인문학’ 구상이 나온다. 세계 ‘해석’을 넘어 세계 ‘제작’에 참여하는 인문학이 그것이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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