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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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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사각을 보다

미국 사진병들이 찍은 사진을 실증적 분석한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
등록 2016-06-24 15:30 수정 2020-05-03 07:17
정전회담을 취재하다 잠시 쉬는 미군 사진병들.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

정전회담을 취재하다 잠시 쉬는 미군 사진병들.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

사진은 응시(凝視)다. 응결된 시선. 이 말은 절반만 참이다. 모든 사진은 역사적이다. 단 한 장도 시공간에서 탈출할 수 없다. 역사적이므로, 모든 사진은 선택과 배제의 결과물이다. 누가 어떤 의도로 촬영했으며, 무엇을 고르고 무엇을 버렸는지가, 부처의 등 뒤 광배처럼, 은밀하게 사진 뒤에 숨어 있다. 그것까지 보아내야만 한다. 그래야 사진의 봉인이 풀린다. 모든 사진에는 두 눈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시각과 사각. 시각은 드러낸 것이요, 사각은 감춘 것이다. 사진에 순정한 객관이 끼어들 틈은 없다.

독일의 시인·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1955)에서 시도한 것도 그러하다. 예를 들어, 철모 수십 개가 제멋대로 널브러진 사진을 두고 브레히트는 4행시를 적었다. “보라, 패배한 자들의 모자를!/ 하지만 우리의 쓰라린 진짜 패배는/ 이 모자가 머리에서 벗겨져 바닥에 뒹굴었던 때가 아니라/ 이 모자를 고분고분 머리에 올려썼던 바로 그 순간이었지.” 브레히트의 은 실은 ‘평화교본’인 것이다.

(정근식·강성현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펴냄)의 문제의식도 그러하다. “전쟁사진은 서로 적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이어서 어느 한쪽의 시각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가 보지 못한 것들을 ‘그들’이 보았던 것으로 보완해야만 전체의 모습이 나타난다.”

책의 부제 ‘미군 사진부대의 활동을 중심으로’가 드러내는바, 이 사진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국 사진부대 사진병들이 찍은 사진을 밑절미로 삼았다. 지은이들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2관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사진들의 이미지와 캡션(사진설명), 문서자료를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책은 서론 격인 1장(‘사진과 전쟁기억’)을 시작으로 ‘미 육군통신대 사진부대와 사진병의 활동’ ‘전쟁 초기 미군 사진병의 시각과 시선’ ‘시각화된 구원, 사각화된 파괴·학살’ ‘한국전쟁 사진의 집성과 시각의 변화’로 짜였다. 각 장의 제목만 일별해도 지은이들이 어떻게 사진자료들을 톺아보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사진 이미지 내용과 시각적 특성에 대한 분석을 사진 생산정보와 결합해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사진 내용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교차 분석했다. 기록과 상징의 차원에서 사회학적 분석도 덧붙였다. 이를 통해 이들 사진의 촬영 시기·주체·의도, 캡션이 의도한 바를 종합 분석해 한국전쟁의 시각과 사각을 드러내려는 게 이 책의 목적이다.

이 책이 지향하는 바는 다음과 같이 뚜렷하다. “동아시아의 평화나 공동체적 인식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 내부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전체를 시야에 넣고 서로의 전쟁기억 재생산 장치들을 비교·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과거’에 대한 관점의 교환은 학문적 영역뿐만 아니라 대중적 기억의 영역에서 좀더 진전되어야 한다.”

1950년 ‘반공 프로파간다’를 내세운 영화들에 각각 출연한 시인 모윤숙(왼쪽)과 육군 특무대 김창룡 대령(의자에 앉은 사람). 김창룡의 오른쪽 인물은 1950년대 멜로영화의 거장이던 홍성기 감독. 모윤숙과 김창룡은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다.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

1950년 ‘반공 프로파간다’를 내세운 영화들에 각각 출연한 시인 모윤숙(왼쪽)과 육군 특무대 김창룡 대령(의자에 앉은 사람). 김창룡의 오른쪽 인물은 1950년대 멜로영화의 거장이던 홍성기 감독. 모윤숙과 김창룡은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다.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

미군이 포로로 잡은 공산주의 ‘혐의자’(위쪽). “공산주의자로 보이는”이라는 사진병의 캡션을 통해 미군이 당시 적과 구별되지 않는 민간인에 대해 혼란스러워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아래쪽 사진은 미군에 의해 봇짐을 검색당하는 피란민들. 피란민 여성을 검색하는 모습인데, 사진병은 미군이 피란민을 돕는 것으로 왜곡해 기록했다.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

미군이 포로로 잡은 공산주의 ‘혐의자’(위쪽). “공산주의자로 보이는”이라는 사진병의 캡션을 통해 미군이 당시 적과 구별되지 않는 민간인에 대해 혼란스러워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아래쪽 사진은 미군에 의해 봇짐을 검색당하는 피란민들. 피란민 여성을 검색하는 모습인데, 사진병은 미군이 피란민을 돕는 것으로 왜곡해 기록했다.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

1950년 9월26일 서울의 한 ‘수복’ 지역에서 미군 7사단을 열렬히 환영하는 주민들(위쪽). 부역 혐의자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려는 행위였다. 아래쪽 사진은 부역자 재판을 받기 위해 줄지어 걸어가는 사람들. 맨 오른쪽 사람의 ‘완장’이 두렷하다.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

1950년 9월26일 서울의 한 ‘수복’ 지역에서 미군 7사단을 열렬히 환영하는 주민들(위쪽). 부역 혐의자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려는 행위였다. 아래쪽 사진은 부역자 재판을 받기 위해 줄지어 걸어가는 사람들. 맨 오른쪽 사람의 ‘완장’이 두렷하다.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

1947년 6월 도로 바닥에 ‘38’을 쓴 미군 카메라맨. “미군 사진병이 미군과 소련군의 점령지대를 분할하는 38선을 시각적으로 연출하고자 쓴 것으로 보인다.” 숫자 ‘38’과 미군의 위치가 상식과는 정반대인 점도 어색하다.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

1947년 6월 도로 바닥에 ‘38’을 쓴 미군 카메라맨. “미군 사진병이 미군과 소련군의 점령지대를 분할하는 38선을 시각적으로 연출하고자 쓴 것으로 보인다.” 숫자 ‘38’과 미군의 위치가 상식과는 정반대인 점도 어색하다.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

쌀 배급을 지켜보는 미군 원조 담당자(위쪽). “여기에서 구원자는 쌀을 퍼주고 있는 한국 경찰이 아니라 그것을 세심하게 살피고 있는 자애로운 표정의 미군인 것이다.” 아래쪽 사진에서 고아 남매에게 전투식량을 나눠준 미군 2명은 카메라를 보고 있지만 여자아이는 무심하게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다. 미군 원조의 이면.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

쌀 배급을 지켜보는 미군 원조 담당자(위쪽). “여기에서 구원자는 쌀을 퍼주고 있는 한국 경찰이 아니라 그것을 세심하게 살피고 있는 자애로운 표정의 미군인 것이다.” 아래쪽 사진에서 고아 남매에게 전투식량을 나눠준 미군 2명은 카메라를 보고 있지만 여자아이는 무심하게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다. 미군 원조의 이면.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

잇단 폭격으로 폐허가 된 경북 포항에서 포착된 한 여인. “모든 것이 파괴된 폐허 속에서 카메라가 있는 곳을 향해 정면으로 응시하는 당당한 모습에서 피해 그 자체의 참혹함뿐만 아니라 피해를 딛고 일어서려는 의지가 돋보인다.”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

잇단 폭격으로 폐허가 된 경북 포항에서 포착된 한 여인. “모든 것이 파괴된 폐허 속에서 카메라가 있는 곳을 향해 정면으로 응시하는 당당한 모습에서 피해 그 자체의 참혹함뿐만 아니라 피해를 딛고 일어서려는 의지가 돋보인다.”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

2005년 눈빛출판사에서 세 권으로 펴낸 <그들이 본 한국전쟁>(위쪽). 아래쪽은 2008년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우리가 본 한국전쟁>.

2005년 눈빛출판사에서 세 권으로 펴낸 <그들이 본 한국전쟁>(위쪽). 아래쪽은 2008년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우리가 본 한국전쟁>.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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