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응시(凝視)다. 응결된 시선. 이 말은 절반만 참이다. 모든 사진은 역사적이다. 단 한 장도 시공간에서 탈출할 수 없다. 역사적이므로, 모든 사진은 선택과 배제의 결과물이다. 누가 어떤 의도로 촬영했으며, 무엇을 고르고 무엇을 버렸는지가, 부처의 등 뒤 광배처럼, 은밀하게 사진 뒤에 숨어 있다. 그것까지 보아내야만 한다. 그래야 사진의 봉인이 풀린다. 모든 사진에는 두 눈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시각과 사각. 시각은 드러낸 것이요, 사각은 감춘 것이다. 사진에 순정한 객관이 끼어들 틈은 없다.
독일의 시인·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1955)에서 시도한 것도 그러하다. 예를 들어, 철모 수십 개가 제멋대로 널브러진 사진을 두고 브레히트는 4행시를 적었다. “보라, 패배한 자들의 모자를!/ 하지만 우리의 쓰라린 진짜 패배는/ 이 모자가 머리에서 벗겨져 바닥에 뒹굴었던 때가 아니라/ 이 모자를 고분고분 머리에 올려썼던 바로 그 순간이었지.” 브레히트의 은 실은 ‘평화교본’인 것이다.
(정근식·강성현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펴냄)의 문제의식도 그러하다. “전쟁사진은 서로 적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이어서 어느 한쪽의 시각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가 보지 못한 것들을 ‘그들’이 보았던 것으로 보완해야만 전체의 모습이 나타난다.”
책의 부제 ‘미군 사진부대의 활동을 중심으로’가 드러내는바, 이 사진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국 사진부대 사진병들이 찍은 사진을 밑절미로 삼았다. 지은이들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2관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사진들의 이미지와 캡션(사진설명), 문서자료를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책은 서론 격인 1장(‘사진과 전쟁기억’)을 시작으로 ‘미 육군통신대 사진부대와 사진병의 활동’ ‘전쟁 초기 미군 사진병의 시각과 시선’ ‘시각화된 구원, 사각화된 파괴·학살’ ‘한국전쟁 사진의 집성과 시각의 변화’로 짜였다. 각 장의 제목만 일별해도 지은이들이 어떻게 사진자료들을 톺아보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사진 이미지 내용과 시각적 특성에 대한 분석을 사진 생산정보와 결합해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사진 내용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교차 분석했다. 기록과 상징의 차원에서 사회학적 분석도 덧붙였다. 이를 통해 이들 사진의 촬영 시기·주체·의도, 캡션이 의도한 바를 종합 분석해 한국전쟁의 시각과 사각을 드러내려는 게 이 책의 목적이다.
이 책이 지향하는 바는 다음과 같이 뚜렷하다. “동아시아의 평화나 공동체적 인식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 내부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전체를 시야에 넣고 서로의 전쟁기억 재생산 장치들을 비교·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과거’에 대한 관점의 교환은 학문적 영역뿐만 아니라 대중적 기억의 영역에서 좀더 진전되어야 한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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