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40분에 영화 를 보러 갔다. 평일 심야 시간, ‘다양성 영화’로 분류되는 영화의 상영관에는 관객이 많이 없었다. 혼자 온 여자 관객을 봤다. 그 여자는 후드티셔츠의 모자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앉아 지루한 표정으로 영화가 상영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득 예전에 같은 상영관에서 심야영화 을 볼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두툼한 패딩 재킷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쓰고 혼자 극장에 온 여자를 봤다. 그녀는 극장에서 파는 생맥주를 들고 있었다. 혹시 의 그녀가 의 그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혹시 여기서 타란티노 영화 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오.” “네?” “아, 저 그게… 제가 예전에 봤던 그분인가 궁금해서요.” “무슨 말씀 하시는 건가요?” “그게 아니고… 죄송합니다.”
극장에 불이 꺼지기 전까지 그녀와의 대화를 상상해보았다. 머릿속 대화지만 “혹시 개봉하면 같이 보실래요?” 같은 작업 멘트는 하지 못했다. 만약 진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면 어땠을까. 단지 우연히 같은 극장에서 같은 영화 2편을 봤다는 것만으로 호감을 가지는 게 가능할까. 어느새 영화가 시작됐다.
는 마거릿 대처의 연설이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으로 흐르면서 끝났다. 벤 휘틀리 감독이 연출한 는 J. G. 밸러드라는 영국의 공상과학(SF) 작가가 1975년에 발표한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영화는 고층 빌딩에 사는 고층 입주민(부자)과 하층 입주민(빈자)의 계급 갈등을 보여줬다. 서로 싸우며 입주민들은 점점 미쳐갔다.
영화의 여운이 가실 무렵, 다시 그녀가 신경 쓰였다. 그때 봤던 그녀가 맞을까. 주차장으로 걸어가면서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맞아, 의 그녀는 SUV 차를 탔었지.’ 영화 속 등장인물처럼 이상한 집착을 하고 있는데 의 그녀가 독일산 해치백 차량에 올라타고 있는 게 보였다. 그녀의 차는 내 차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그때도 그랬다. SUV의 전조등에 눈이 부셨던 기억이 났다.
청승맞고 변태 같은 이야기였다. 의 그녀가 의 그녀인지 알 수 없다. 얼굴이 기억나지도 않는다. 게다가 두 사람은 다른 차를 탔다. (그새 차를 바꿨나?) 만약 같은 인물이라고 해도, 다음에 을 심야영화로 볼 때 또 만난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 거다. 새벽 3시에 여는 카페를 알고 있어도 “영화 어떻게 보셨어요. 커피 한잔 하실래요?” 같은 말을 절대 건넬 일이 없기 때문이다.
심야영화를 보고 나면 ‘라멘’이 먹고 싶어진다. 이혼남
“지금쯤 사귀는 건 아니어도 ‘썸’ 정도는 타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내가 이 칼럼을 쓴다는 걸 아는 회사 후배가 말했다. 이 칼럼을 처음 쓸 때 원고를 청탁한 기자는 내게 ‘이 글을 쓰는 1년 사이 진짜 새 인연을 만나 연애를 하면 재밌지 않겠냐’고 했다. 그 내용을 쓰면 더 좋다면서.
핵심은 이거다. 외롭지만 견딜 만하다. 시답잖은 우연을 빌미로 새 인연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실천할 용기는 없다.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이혼을 하고 안 하고의 문제도 아니다. 귀찮음이다. 30대 후반이 되고 나니 외로움이 견뎌진다. 지난 연말부터 ‘외롭다’고 이 지면을 통해 징징거렸더니 덜 외로워지는 거다. 정말 신기하다. 그래서 연애는 하면 좋고 아님 말고다. 그래도 심야영화는 계속 보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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