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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같은 연애

진짜 말도 안 되는 남성들의 판타지… 야구·축구 보고 게임하는 데이트
등록 2016-05-21 08:33 수정 2020-05-02 19:28
연어회는 축구, 야구, 게임에 모두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이혼남

연어회는 축구, 야구, 게임에 모두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이혼남

“설마 하루 종일 게임한 거야?” “아니, 2박3일. 수요일 저녁부터면 3박4일인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앞뒤로 둔, 국가가 급조한 나흘의 연휴가 주어졌을 때 딱 한 번 외출을 했다. 그때 만난 친구와의 대화는 저렇게 시작됐다. 너무 오랜만에 TV 모니터가 아닌 사람을 상대로 말을 했더니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연휴 기간. 낮과 밤이 바뀌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 몰랐다. 배가 고파도 잠이 쏟아져도 한 게임만 더, 한 게임만 더 하다보니 밤을 새워 게임을 할 수 있었다. 하얗게 날이 밝아오면 타임워프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창밖이 어둑어둑해질 때도 그랬다. 그렇게 흘러간 시간이 아깝냐고? 물론 아깝다. 무수히 많은 다른 일을 할 수 있었을 테니까. 시간을 되돌린다면 뭘 하겠냐고? 아마도 다시 게임. 후회는 하지 말자. 재밌었으니까.

어떤 유부남들은 이런 이혼남의 일상이 부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대체로 게임을 즐길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게임을 하는 유부남들은 둘 중 하나다. 아내의 잔소리에도 정신 못 차리고 게임만 하는 ‘개망나니’거나, 게임을 즐기는 아내가 있거나!

“ 소설도 봤어?” 연휴 기간 딱 한 번의 외출에서 늦게 자리에 합류한 친구가 물었다. 그는 야구를 좋아한다. 안타깝게도 한화 이글스 팬이라 한참 가슴 아픈 야구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 보니 예전 애인들과 야구장에 참 열심히 다녔다. 그렇게 ‘구남친들’에게 야구를 배운 여성이 많았다는 이야기 끝에 화제가 축구로 넘어왔다.

“소설이 더 재밌었지?” 친구는 ‘나도 축구 좀 안다’는 식으로 다시 물었다. “당연하지. 축구 얘기가 영화보다 훨씬 더 많이 나오잖아. 축구와 연애에 관한 영화를 보려면 닉 혼비 소설 원작의 를 봐야 해. 런던 연고의 아스널을 좋아하는 남자(콜린 퍼스)와 ‘훌리건’을 경멸했던 여자(루스 겜멜)가 연애하는 얘긴데…. 참, 2005년에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영화도 있어. 라고. 그건 야구 버전이야. 보스턴 레드삭스 광팬인 남자(지미 펄론)와 워커홀릭 여자(드류 배리모어)가 주인공이야. 그런데 에서 새벽에 부부가 같이 맥주를 마시면서 엘클라시코(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를 보는 장면은 진짜 남자들의 판타지인 것 같아.”

와 역시 남자들의 판타지가 실현되는 영화다. 남자는 여자 대신 자신의 팀을 선택하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결국 받아들인다. 이게 진짜 말이 되는 얘긴가. 그 영화의 속편이 나온다면 그들은 결국 이혼하고 말 것이다.

2박3일 게임만 하고 단 한 번의 외출을 했던 연휴 기간. 게임을 하지 않은 시간에 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다른 일들 가운데 ‘데이트’라는 항목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혹시, 만약에,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게임을 좋아하고 축구를 좋아하고 야구를 좋아하는 애인과의 데이트라면 장소는 그냥 우리 집 거실이 될 수도 있었을까. 같이 게임하고, 같이 야구 보고, 같이 축구 보고, 치킨이나 시켜먹는 그런 데이트. 만사 귀찮은 이혼남의 판타지는 질이 낮다. 이혼을 해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 레스터 시티 우승 만세!

이혼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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