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중 전화가 휴대전화 화면에 떴다. 언제나 그렇듯 약속 없는 일요일, 뭐할까 뭐할까 하다가 수영장에 가서 1시간 수영하고 나와 확인한 것이다. 전화 건 사람은 사촌형이었다. 평소 연락을 자주 하는 사이는 아니다. 무슨 일인지 도무지 짐작도 안 갔다.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이 대뜸 말했다. “소개팅 할래?” ‘만세! 드디어 소개팅을 하는구나.’ 내심 기뻤지만 “저야 좋죠”라고 무심한 듯 대답했다. 사촌형은 소개팅 상대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예쁘다는 걸 강조했다. “보자마자 반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괜스레 설레었다.
일주일 뒤, 다시 일요일. 새벽에 이탈리아와 독일의 ‘유로 2016’ 8강 경기를 보느라 밤을 새우고 늦은 오후까지 잤다. 훌쩍 일요일이 지나고 있었다. 해가 지고 집 안이 어둑어둑해졌다. 침대에 누워 협탁 위 작은 스탠드의 불을 켰다. 컴컴한 방 안에 작은 불빛이 벽을 타고 올라왔다. 초저녁인데 늦은 밤 같았다. 노래를 틀었다. 평소 머리를 놓는 창문 쪽으로 다리를 놓고 거꾸로 누워봤다. 천장을 바라봤다. 멍하니 노래를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일요일이었다. 휴대전화 화면을 확인했다. 내게 연락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문자메시지를 보낸 소개팅 그녀는 답이 없었다. 괜스레 기분이 울적했다.
수요일에 만난 그녀와의 일을 구구절절 써보려 했다가 마음을 바꿨다. 실패한 소개팅을 복기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랬다면 저랬다면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부질없는 짓임을 알지만 사실 이미 머릿속에서 수차례 복기했고 후회했다. 굳이 글로 옮기는 게 싫었다. 그래도 궁금한 사람은 남자 비율이 높은 인터넷 커뮤니티 오유, 엠팍, 클량 등에서 ‘소개팅’을 검색해보면 된다. 검색 결과 가운데 절반 이상은 실패한 소개팅일 거다. 나의 실패 이유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냥 그녀(들)는 내가(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다.
나를 마음에 들어했던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헤어지고, 결혼했다가 헤어졌다. 연애는 반복이다. 결혼이 반복되는 연애의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의 경우엔 그렇지 않았다. 나를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을 새로 만나기가 쉽지 않다. 이 글을 시작했던 대략 1년 전처럼 지금도 곁에 아무도 없다. 이혼남의 연애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 되지 못했다.
앞으로 1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다. 오늘처럼 혼자 파스타를 만들어 거실 TV 앞에서 먹고, 추석이나 설에는 불효자가 된 기분으로 시골에 내려가 부모님을 찾아뵙고, 동호회에 가입해볼까 고민해보고, 지난 소개팅을 또(!) 복기하고, 연말이 되면 외로움에 징징거리다가, 봄이 되면 집 안에 진동하는 아저씨 냄새를 처리하고, 내 결혼식에 왔던 누군가의 결혼식장에 찾아가고, 화창한 날씨의 기운에 못 이겨 미술관이든 박물관이든 구경 다니고, 혼자 심야영화를 보고, 신작 게임이 나오면 신나서 밤새 게임을 하고, 2016/2017 시즌 유럽 축구를 보면서 ‘가~끔’ 엑스(와이프) 생각도 하면 또 1년이 지날 거다. 그러면 또 누군가 소개팅을 시켜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앞으로의 1년이 지난 1년과 다를 수도 있다. 파스타가 지겨워지고, 명절에 부모님이 서울로 올 수도 있고, 동호회에 가입하고, 소개팅 복기 따위는 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고백할 수도 있고, 연말을 연인과 보낼 수도 있고, 그녀가 가끔씩 집에 오면 아저씨 냄새는 사라질 것이고, 그녀와 함께 누군가의 결혼식장에 갈 수도 있고, 미술관 데이트도 하고, 같이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고, 축구도 볼 수 있겠다. 이런 변화를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 달라져야 한다. 뱃살부터 빼자. 그래도 안 생긴다고?
이혼남<font color="#991900">*‘다시 연애할 수 있을까’ 연재를 마칩니다. 좋은 글 보내주신 ‘이혼남’과 칼럼을 아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font>전화신청▶ 02-20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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