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링. 문자메시지 알람이 울린다. “선배, 에 칼럼 써요?” 회사 후배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뭐라고 대답할까 고민했다. “어떻게 알았어? ㅎㅎ” 어색한 ‘ㅎ’이 추가된 답장을 보냈다. 돌아온 후배의 말은 이랬다. “딱 선배 얘기더구만.” 소설을 쓸 수는 없으니 실제로 겪었던 일을 썼다. 이야기에 양념을 좀 치긴 했으나 너무 쉬운 연상 퀴즈였던 모양이다.
이혼남이 누군지 아는 사람들이 생겼다. “너, 맞지?” 하며 알은척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단한 비밀인 양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3주 전에 소개팅 해달라고 쓴 글을 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그래서 소개팅을 했냐고? 못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다. 문자메시지를 보냈던 후배는 “다음 글에 선배의 이상형을 써보라”고 했다. 이혼도 안 해본 후배의 조언은 무시하는 게 좋겠다. 대신 소개팅의 기억을 떠올려보기로 했다.
첫 소개팅은 대학생 때 했다. 흐음. 이 기억은 꺼내지 말자. 소개팅에 나왔던 그녀는 주선자인 친구에게 “그 오빠 좀 이상해요”라는 말을 남겼다. 두 번째 소개팅은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에 했다. ‘여자사람’ 친구(오래된 애인 있음)와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갑자기 친구가 물었다. “소개팅 할래?” 망설였다. 여자가 해주는 소개팅이라니. 전설처럼 내려오는 소개팅 선배들의 말에 따르면 여자는 자신보다 예쁜 사람은 절대 소개해주지 않는다 했거늘. 게다가 ‘예뻐?’라고 물어보거나 사진을 보여달라고 하면 ‘찌질’해 보일 테고. “해보지, 뭐.” 속마음과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홍익대 부근 카페에서 그녀와 만나기로 했다. 약속 시간에 10분쯤 늦었다. 최악이다. 그나마 늦겠다고 문자는 했다. 헐레벌떡 도착해서 전화를 했더니 저 멀리 누군가가 전화 받는 게 보였다. 어라. 소개팅 선배들의 조언이 틀렸다. “파스타, 좋아하세요? 예약해둔 곳이 있는데.” 이런 뻔한 말을 하고 자리를 옮겼다. 지금은 파스타 맛을 알지만 그땐 몰랐다. 어디서 본 건 있었다. “와인 드실래요?” 하고 물었다. 그녀가 웃으며 대답했다. “네, 좋아요.”
세 번째 소개팅은 두 번째 소개팅을 한 그녀와 헤어진 뒤에 했다. 싱글 생활을 1년쯤 했을까. 겨우내 집구석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축구만 보던 서른 중반의 오빠가 불쌍해 보였는지 동생이 ‘아는 언니’를 소개해줬다. 여전히 파스타 맛을 모르던 시절. 이태원 파스타 맛집을 검색했다. 초록색 포털 사이트에서 우연히 파스타 맛집이 아니라 스테이크 맛집을 발견했다. 그래, 여기다. 파스타보다 스테이크가 맛있겠지. ‘오빠랑’ 갔다며 누군가가 블로그에 올린 사진을 보고 침을 흘렸다. 소개팅이 있던 날, 약속 시간에 10분쯤 늦었다. 역시 최악이다. “어떻게 오셨어요?” 그녀가 묻는다. “아, 전철 타고.” 스테이크만 맛있게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혹시 몰라 전화를 했다. 안 받는다. 그래도 혹시 몰라 문자를 남겼다. 대화창 옆에 붙은 숫자 ‘1’이 사라지고 한참 뒤에 답장이 왔다. “바빴어요.” 그래도 혹시 몰라 “다음주에 시간 되시냐”고 물었다. 왜 그랬을까.
네 번째 소개팅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대신 이탈리아 세리에A 새 시즌에 열광할 무렵에 했다. 사실은 소개팅이 아니라 선이다. 간호사로 일하는 엄마 친구 딸이 아는 언니라고 했다. 큰아버지가 “결혼 언제 할 거냐” 물으면 “할 때 되면 하겠죠” 답하던 시절이었다.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은 시큰둥했다. 소개팅을 100번 넘게 한 친구가 말했다. 항상 플랜A와 플랜B를 준비하라고. 그날은 그냥 플랜B만 준비했다. 서둘러 밥만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니 그분에게 미안하다. 일주일 뒤에 엄마 전화를 받았다.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했다던데.” “네? 진짜요? 아니에요. 됐어요.” “간호사가 얼마나 괜찮은 직업인데.” “아, 안 만난다고요!”
다섯 번째 소개팅은 생략하자. 성혼선언문을 함께 읽었던, 가정법원에 함께 갔던 그녀의 얘기를 해야 한다. 여섯 번째 소개팅을 할 수 있을까. 해도 될까. 그냥 축구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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