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정도 지나면 익숙해진다. 다만 뇌가 코로 들어오는 냄새가 무해하다고 인정하기 전까지 기분이 좋지 않다. 아저씨 냄새가 어느새 집안 가득이다. 퇴근 뒤 집에서 이혼남을 반기는 건 글로는 묘사하기 힘든 그 냄새가 전부다. 아, 나는 내 냄새가 싫다. 집에 오는 손님들도 아저씨뿐이지만 그들을 뒤에 세우고 현관문을 열 때 민망하다.
찬 바람이 불고 창문을 닫고 살았다. 보일러도 틀었다. 내 몸에서 나는 냄새를 알게 됐다. 분무기 형태의 뿌리는 방향제를 사용해봤다. 그때뿐이었다. 공기청정기가 있으면 아저씨 냄새가 없어질까 싶어 구글을 검색했다. 검색 키워드는 ‘공기청정기 아저씨 냄새’였다. 아마 아저씨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을 법한 한 커뮤니티 게시판 글이 검색됐다. 이혼남과 똑같은 고민을 가진 네티즌이 올린 글이었다. 댓글을 살펴봤다. 아저씨 냄새의 원인부터 해결책까지 모든 게 댓글에 있었다.
짐작 가능했던 원인인 “좀 씻어라” “이불, 베갯잇 자주 빨아라” 말고 눈에 띄는 견해를 발견했다. 세상의 모든 이상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영국의 어느 대학에서 조사한 건지 모르겠지만 남자들은 의외로 샤워를 하든 세수를 하든 귀 뒷부분을 잘 씻지 않는다는 것이다. 향수를 바를 때 귀 뒷부분에 바르지 않나. 고개가 끄덕여졌다. 가만히 생각해봤다. 내가 샤워할 때는 어땠나. 설마 지금까지 그곳을 씻지 않았던 건 아닐까. 그건 아닌데. 자꾸 귀 뒤로 손이 간다.
화장품과 아저씨 냄새의 상관관계를 지적한 댓글도 있었다. 대체로 여자에 비해 남자는 화장품을 덜 쓰기 때문에 체취가 더 많이 난다는 의견이었다. 여자들은 샤워하면 보디오일, 보디로션, 스킨, 로션, 에센스, 아이크림, 세럼 이런 걸 바른다고 하던가. 기초화장 순서를 검색해보니 그렇다고 한다. 이혼남은 엑스와이프가 쓰던 화장대가 있지만 그 위에 있는 화장품이라곤 핸드크림이 전부였다.
대강 원인을 알았다. 원인이 다양하니 해결책도 다양했다.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행동에 옮겼다. 이불도 빨고 베갯잇도 빨고 쿠션 커버도 빨았다. 샤워를 하든 세수를 하든 귀 뒤를 꼼꼼하게 씻었다. 샤워할 때 비누 쓰지 말고 보디클렌저를 쓰라고 해서 마트에 갔다. 보디클렌저와 보디로션을 샀다. 스킨, 에센스, 크림을 한 방에 해결한다는 남성화장품도 주문했다. 환기도 자주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부터 열었다. 출근할 때 창문을 살짝 열어놓고 가기도 했다.
공기청정기는 사지 않았다. 의견이 분분했다. 누구는 바로 해결했다고 했지만 아닌 사람도 있었다. 사실 마음에 뒀던 공기청정기의 가격을 보고 구매 의욕이 사라졌다. 월급을 많이 주는 직장에 다녔어야 하는 건데. 혹시 그럼 이혼하지 않았을까. 부질없다. 회사한테 미안해진다. 공기청정기 대신 댓글에서 언급한 향초를 살까 했다. 직장 동료들과 상담에 돌입했다. 어떤 향초가 좋은지 물어보고 싶었다.
여성 동료들은 의외로 아저씨 냄새로 고민하는 이혼남에게 친절했다. 우선 앞서 얘기한 원인과 해결책을 복습해야 했다. 샤워는 자주 하는지, 이불은 자주 빠는지, 심지어 귀 뒤는 자주 씻는지 확인한 뒤 그녀들은 향초를 비롯해 집 안을 향기롭게 만드는 여러 상품을 추천해줬다. 그 가운데는 꽃도 있었다. 꽃을 사서 거실에 놓아보라는 거다. 혼자 사는 이혼남 집에 꽃이라니.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녀들은 상담 임무를 완수했다고 생각했는지 자신들이 좋아하는 꽃 이름 대기에 바빴다. 향초 뭐 살지 아직 못 정했는데. 결국 산 건 향초가 아니라 가습기 비슷하게 생긴 아로마디퓨저다.
며칠 뒤. 현관문을 열 때 조금 기대했다. 향긋한 냄새가 나진 않아도 아저씨 냄새는 나지 않겠지. 두근두근. 문이 열리자 익숙한 냄새가 이혼남을 반겼다. 집에 올 애인도 없는데 왜 그 난리냐고? 연애 칼럼에 냄새나는 글 쓰지 말라고? 연애는 준비하는 자에게 오는 법이다. 아직 만나지 못한 그녀가 집에 올지도 모르잖아. 참, 댓글 중 가장 인상적인 건 이거다. “여자가 있으면 마법처럼 사라지는 그 냄새 말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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