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 면을 삶는다. 오늘은 봉골레 파스타다. 어느새 파스타가 주식에 가까워진 느낌이다. 가장 많이 만들어 먹는 건 토마토바질 파스타다. 재료는 올리브유, 방울토마토, 바질, 마늘, 파스타 면이 전부다. 파스타 면을 냄비에 삶는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른다. 달궈지면 얇게 썬 마늘을 넣고 기름에 마늘 향이 배게 한다. 방울토마토 7~8개를 절반 혹은 4분의 1 크기로 썰어 프라이팬에 투척한다. 베란다에서 키우는 생바질을 뜯어와 손으로 대충 찢어 넣는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파스타 면 냄비의 면수를 조금 넣어주고 토마토가 숨이 죽을 때까지 끓인다. 파스타 면이 다 익으면 프라이팬으로 옮겨 담고 살짝 볶아준다. 이제 접시에 담을 때다. 접시에 담긴 파스타 위에 파르메산 치즈를 뿌려준다. 그레이터를 이용해 좀더 그럴싸한 모양을 만든다. 이렇게 완성된 파스타를 TV 앞 거실 테이블에 놓는다. 리모컨을 잡는다. 채널 탐색이 시작된다.
이혼하기 전까지 파스타 따위를 좋아하지 않았다. 직접 만들어 먹는 건 상상도 못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먹는 파스타는 비싸기만 했다. 평양냉면보다 비싸다! 양도 적어서 마늘빵 추가를 고민했다. 을밀대 냉면처럼 ‘양많이’를 주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소개팅을 할 때(급하게 ‘홍대 파스타 맛집’을 검색했다)나 여자친구와의 기념일(급하게 ‘이태원 파스타 맛집’을 검색했다)에나 먹는 게 파스타였다.
이혼남이 되고 보니 밥 먹는 게 일이 됐다. 신동엽·성시경이 출연하는 요리 프로그램 제목처럼 “오늘은 뭐 먹지?”를 되뇌는 게 일상이 됐다. 라면·치킨·피자가 질릴 줄은 몰랐다. 소화도 잘 안 됐다. 나이를 먹긴 먹었다. 시골의 노모는 전화로 늘 밥을 해먹으라고 했지만 문제는 반찬이다. 달걀프라이·참치캔·김만 먹고 살 순 없다. 20대 자취생 시절 지겹게 먹었다. 반찬 재료가 더 문제다. 한번 냉동실에 들어간 고기는 화석처럼 굳어갔다. 파·양파·당근·감자 등 채소는 한두 개만 소비되고 나머진 냉장고 속에서 싹이 트고 물러졌다. 채소는 음식물쓰레기 봉투에 들어가기 위해 존재하는 게 틀림없다.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 건 ‘싫어하는 일 베스트5’에 늘 들어간다. 최현석·샘킴 같은 셰프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냉장고를 부탁하고 싶었다. 엑스와이프가 혼수로 장만하고 두고 간 양문형 냉장고는 1인 가구 돌싱남에겐 지나치게 컸다. 좁은 집, 좁은 주방에 놓을 곳이 없어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러다가 파스타를 만났다.
이혼하고 나니 친구가 그랬다. “이제 화려한 싱글로 살아야지.” 파스타 레시피를 읊어대면 좀 화려해 보이는 건 개뿔! 현실은 퇴근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오면 난닝구 바람으로 가스레인지 앞에 선 배 나온 아저씨가 있을 뿐이다. 파스타를 완성한 뒤가 핵심이다. 파스타를 먹으면서 뭘 하는지 이미 얘기했다. 그저 채널을 탐색한다. 스카이라이프 만세다. 밤새도록 TV 다시보기로 요리 프로그램을 전전한다.
쿡방 유행 따라 요리하는 재미라도 찾아서 다행이다. 내가 만든 음식을 다른 사람에게도 먹여보고 싶다. 화려한 싱글로 살라던 친구에게 전화했다. “집에 놀러올래? 파스타 해줄게.” “오늘 여자친구 만나야 하는데.” 하하, 헛웃음이 나온다. 나라도 안 가겠다. 아저씨 둘이서 파스타라니. 당연히 오늘 만든 봉골레 파스타도 TV와 함께 먹었다. 아무리 내가 요리 천재라도 혼자 먹는 파스타가 무슨 맛이 있겠나. 허겁지겁 집어넣던 그때 그 시절 기념일 파스타가 더 맛있다. 같이 파스타 먹을 사람을 찾아야 할까. 배 나온 이혼남이라도 괜찮을까. 다시 연애해도 될까.
경력 1년 초보 이혼남* ‘다시 연애할 수 있을까’는 결혼 3년 만에 이혼하고 혼자 사는 ‘돌싱남’이 새로운 연애를 그리며 쓰는 칼럼입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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