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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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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금은 무조건 10만원!

결혼 앞둔 대학 후배에게 “형수는 이제 없어” 내 결혼식 참석한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
등록 2016-01-14 09:36 수정 2020-05-02 19:28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였다. 사무실에 앉아 멍하니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우웅~” 휴대전화가 떨린다. 또 스팸전화인가 싶었다. 휴대전화 2년 약정 기간이 끝나니 하루에 한 번씩 070으로 시작되는 번호의 스팸전화가 온다. 시큰둥하게 고개를 떨궈 휴대전화 화면을 봤다. 오랜만에 보는 대학 후배의 이름이 보였다. 자연스레 전화기를 손에 쥐었다. 2초 정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감이 왔다. 짧은 순간이지만 나의 결혼식장에 찾아온 후배의 얼굴과 내게 건넸던 축하 인사가 떠올랐다. 전화를 받았다. “결혼하니?” “하하. 예, 형.” “축하한다!”
대학 시절에는 후배와 꽤 어울려 다녔다. 군대를 다녀와서 뒤늦게 동아리에 가입했더니 3살 어린 1학년 후배들과 동기로 지내라고 했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게 됐다. 후배는 군대에 갔다.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졌다. 졸업 이후에는 페이스북의 ‘좋아요’ 버튼이 둘 사이의 유일한 소통 수단이 됐다. 그런 후배에게 청첩장을 보낼 생각은 없었다. 페이스북에 결혼 소식을 올린 게 문제였다. 후배가 먼저 연락을 해왔다. 결혼식에 참석하겠다면서. 고마웠다.

혼자 먹기에는 결혼식 뷔페보다 기사식당 밥이 맛있다. 이혼남

혼자 먹기에는 결혼식 뷔페보다 기사식당 밥이 맛있다. 이혼남

후배의 결혼식에 꼭 참석하고 싶었다. 후배에게 물었다. “언제 해?” “다다음주 토요일요.” “식장에 가면 내가 알 만한 애들이 있을까?” 무심코 던진 이 질문이 화근이 됐다. 내 결혼식에 참석했던 후배는 혼자였다. 밥이나 제대로 먹고 갔을까. 반대의 상황이 되니 밥이나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 걱정됐던 거다. 후배가 대답했다. “글쎄요. 형수님이랑 오면 되잖아요.” “형수는… 이제 없어~.”

의 귀염둥이 진주가 했던 “산타, 없어~”라는 대사를 흉내 내서 얘기했다. 후배는 을 보지 않았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 하는 짧은 탄식이 들렸다. 속으로 ‘괜히 전화했나’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너는 잘 살 거야” 하고 전화를 끊었다. 휴대전화를 내려놓자마자 후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예전에 결혼 준비할 때 들었던 얘기 중 이런 게 있다. ‘결혼식 앞두고는 초상집에 가지 않는다’라는 말이다. 좋지 않은 기운은 받지 말라는 뜻일 거다. 자신의 결혼식에 초대하는 사람에게 이혼 사실을 알리다니. 큰 잘못을 저지른 기분이 들었다.

후배가 보내준 모바일 청첩장을 보니 기분이 더 착잡해졌다.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새신랑, 새신부에게 누를 끼친 것 같았다. “와이프 미인이네~” 하고 문자를 보냈다. (신부가 진짜 예쁘긴 했지만) 미안한 마음에 보낸 문자였다. 스멀스멀 머릿속에서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결혼식장은 서울 강남 쪽이었다. 차가 막힐 게 뻔하고 전철 타고 가기도 멀다. 축의금만 전해주면 좋겠다 싶었다. 대신 축의금을 전해줄 사람이 없는 게 문제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후배의 결혼식에 꼭 참석해서 진심으로 결혼을 축하해줄 생각이다. 얼굴 도장만 찍고 도망치듯 피로연장으로 가지 않고 식장에서 축가까지 다 듣고 올 생각이다. 피로연장에 하객들이 너무 붐벼서 자리가 없더라도 어떻게든 밥도 먹을 거다. 아, 사진은 안 찍는 게 낫겠지. 그렇게 하고 나면 후배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어지지 않을까. 잘 모르겠다.

이혼을 하고 난 다음에도 결혼식에 참석할 일이 있다. 그럴 때 오랜만에 친구, 선배, 후배들을 만났다. 그들은 대부분 나의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이다. 나에게 왜 이혼했냐고 질책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 앞에서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잘 살겠다고 선언하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결혼은 함께 살기로 한 두 사람만의 약속이 아니라고 새삼 느끼고 있다.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결혼의 증인이다. 이번 후배의 결혼식을 계기로 앞으로 당당하지는 않지만 당당한 마음으로 결혼식에 참석해야겠다. 내가 받았던 축의금도 다시 돌려줘야 하니까. 후배는 얼마를 냈더라. 참, 이혼하고 정신없이 이사하면서 하객 명단 정리한 것 잃어버렸지. 앞으로 모든 결혼식 축의금은 무조건 10만원이다!

이혼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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