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수
2월이면 남쪽과 동쪽 지방에서 꽃소식이 들려온다. ‘복(福)과 장수(長壽)의 풀’인 복수초가 1번 타자다. 눈을 뚫고 올라와 황금술잔 꽃을 피운 복수초는 성스럽다. 들에서는 봄까치꽃이 1번 타자다. 양지바른 길가에 까치 떼가 무리지어 앉은 것처럼 봄을 알리는 전령사다. 열매 모양에 빗대어 큰개불알풀이라고도 한다. 물이 얼고 눈이 쌓이고 바람이 차지만, 복수초와 봄까치꽃이 피면 이미 봄이다.
계절마다 바꿔 피는 꽃을 만나는 것은 산행의 또 다른 묘미다. 산행을 하다보면 자세히 오래 보지 못하고, 사진 한 장 찍고 스쳐지나가기 십상이다. 그래도 예쁘고 사랑스런 모습에 감탄하고, 또다시 만나길 갈망한다.
김춘수 시인은 썼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꽃’) 안도현 시인은 한술 더 뜬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絶交다!”(‘무식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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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게 하고, 시인으로부터 절교 선언을 당하지 않으려면 꽃의 이름을 알고 불러줄 수 있어야 한다. 독학으로 배우고 있는 나로서는 이름을 모르는 꽃이 너무도 많다.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은 보통 잎이 나기 전에 가냘픈 꽃대에 꽃을 피운다. 다른 풀이나 나무가 잎을 내기 전에 얼른 꽃을 피워 벌과 나비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연약한 식물의 생존 전략이다. 복수초 다음으로 노루귀와 바람꽃 종류가 꽃을 피운다. 햇빛 잘 드는 계곡 주변에서부터 핀다.
노루귀는 청순 그 자체다. 잎이 쫑긋 세운 노루의 귀를 닮았다. 꽃색은 분홍, 보라, 흰색 등 다양하다. “봄이 오는 소리/ 민감하게 듣는 귀 있어/ 쌓인 낙엽 비집고// 쫑긋쫑긋 노루귀 핀다/ 한 떨기 조촐한 미소가/ 한 떨기 조촐한 희망이다”(최두석, ‘노루귀’) 산행에서 노루귀를 만난 날은 그 여흥으로 일주일을 버틸 수 있다.
바람꽃은 겨울 끝자락에 찬바람 맞으며 피었다가 찬바람 맞으며 진다고 하여 바람꽃이다. 수리산 계곡에 변산바람꽃 군락지가 있다. 너도바람꽃은 ‘겨울과 봄의 계절을 나누는 풀’이란 의미로 ‘절분초’라고 한다. “손톱만 한 너에게서/ 봄바람은 일렁이고/ 꽃샘추위도 얼음을 깬다// …계절의 행간에서/ 제일 먼저 웃고 있는/ 너는/ 자세를 낮추지 않고는/ 만나지 못한다”(전길자, ‘바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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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도 눈이 올 때가 있다. 2013년 4월21일, 태백산 유일사 능선에서 쌓인 눈을 뚫고 노란 꽃을 피운 한계령풀을 만났다(사진). 이름에 우리나라 지명이 들어간 꽃도 많다. 변산바람꽃, 한계령풀, 남산제비꽃, 태백제비꽃, 지리터리풀, 우산고로쇠…. 모두 그 지역에서 처음 발견된 자생종이다.
4월 말이나 5월 초에 천상화원인 점봉산 곰배령이나 조침령 구간에 큰앵초, 현호색, 벌깨덩굴, 괭이밥, (용)둥글레, 참배암차즈기, 회리바람꽃, 홀아비바람꽃, 태백제비꽃, 요강풀, 꿩의바람꽃, 풀솜대(지장나물), 연령초 등을 만날 수 있다. 보고 싶다. 간절히. 만날 날 기다리는 일주일이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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