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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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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완주할 때까지

백두산의 영험한 기운과 혁명의 정취,

세 번을 오르며 느끼다
등록 2017-01-06 20:04 수정 2020-05-03 04:28
1998년 8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통일위원회 주관으로 백두산 천지 달문에 갔다. 김선수

1998년 8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통일위원회 주관으로 백두산 천지 달문에 갔다. 김선수

백두산은 한반도의 시원(始原)이자 한민족의 발상지이며 민족의 꿈의 고향이다. 한반도 척추인 백두대간도 여기서 시작한다. 백색의 부석(浮石)이 얹혀 있고 백설로 덮여 있어 마치 흰머리와 같다 하여 ‘흰(白)머리(頭)산’이라 부른다.

북한과 중국의 경계가 백두산을 가른다. 중국에서는 장백산(長白山), 즉 ‘길게 흰 산’이라 한다. 경계비를 사이에 두고 북한과 중국이 갈린다. 백두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중국 쪽에선 남파·북파·서파 3개가 있고, 북한 쪽에선 삼지연을 경유하는 길이 있다. 지금은 어느 쪽으로 오르든 정상 바로 밑까지 차로 이동한다. 정상까지도 차로 이동하거나 가마로 오를 수 있다. 산행이라기보다 여행 수준으로 정상을 밟을 수 있다.

백두산에는 세 번 다녀왔다. 1998년 8월 중국 이도백하에서 북파 천문봉에 올랐고, 2003년 개천절에는 북한 삼지연 쪽에서 장군봉을 올랐고, 2015년 3월29일 중국 송백하에서 서파에 올랐다. 어느 쪽이든 순백색 자작나무 군락이 인상적이었다. 누군가 말했다. ‘자작나무에선 혁명의 냄새가 난다’고.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의 피로 물들었던 지역이다.

1998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통일위원회 주관으로 중국 동북 지방을 둘러보고 백두산을 찾았다. 이도백하에서 버스로 북파 산문으로 이동한 뒤, 첫날은 천문봉에 올라 천지와 사방을 조망했다. 지프차로 정상까지 오르니 별로 걷지도 않는다. 백두산 날씨가 워낙 변덕스러워 천지를 보기 쉽지 않다고 하나, 천운인지 날이 맑아 천지와 사방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었다.

산문 숙박업소에서 하룻밤 자고 걸어서 천지(장백)폭포를 거쳐 천지 달문에 갔다. 이 구역은 귀한 야생화들의 보고인데, 당시 야생화를 알지 못해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하더니 보석이 바닥에 널렸는데도 전혀 몰랐다. 천지에서 나룻배를 타고, 맑은 물에 손도 담갔다. 일행은 감격에 겨워 을 제창했다.

2003년 개천절 주간 남북 공동행사에 시민사회단체 일원으로 참여했다. 사흘에 걸쳐 묘향산, 구월산, 백두산을 다녀왔다. 백두산은 평양에서 비행기로 삼지연에 간 뒤 버스로 장군봉 밑까지 갔다. 중간에 밀영과 정일봉을 구경했다. 장군봉 밑 정류장에서 정상까지는 궤도차로 올랐다. 아쉽게도 거센 눈발이 날려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장엄하게 개마고원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줄기는 물론이고 바로 밑 천지도 보이지 않았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오를까?

2015년 3월29일 ‘노동자 백두산 역사평화기행’ 에 참여했다. 백두산은 송강하에서 숙박하고 서파로 올랐다. 3월 말임에도 백두산 정상엔 눈이 쌓였다. 버스로 산문 주차장에 도착해 입장권을 끊고 들어가 미니버스로 이동하고 다시 스노오토바이로 정상 아래까지 갔다. 스노오토바이는 운전자가 앞에 있고 뒷좌석에 2명씩 앉았다. 정상 바로 아래 광장에서 1442개 계단을 오르면 정상이다. 계단은 나무로 잘 정비돼 있다. 계단 입구에 ‘등상장백산일생평안’(登上長白山一生平安·장백산 정상을 오르면 일생 동안 평안하다)이라 써놓았다.

계단 양옆으로 사람 키보다 높이 눈이 쌓여 있었다.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흐렸는데, 스노오토바이로 올라가는 동안 구름은 저 아래 있고 하늘은 짙은 파랑으로 청명했다. 흰 눈이 배경이라서 더욱 푸르렀다. 서쪽으로 운해가 퍼져 있고, 그 속에 순백의 산줄기가 드러났다. 별천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히 선경(仙境)이다. 천지는 얼어서 눈에 덮여 있다.

정상에는 경계 표지석이 있다. 남쪽은 북한 땅이고, 북쪽은 중국 땅이다. 여름에는 북한 지역에 경계병이 있어 북한 영역으로 들어가는 걸 막는다. 북한 쪽에서 봐야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이날은 북한 쪽에 지키는 사람이 없어 자유롭게 북한 영역에서 볼 수 있었다. 남북 평화를 빌며 술 한잔 올리고 예를 갖췄다.

북쪽 백두대간이 풀려 완주할 수 있기를, 내가 건강할 때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원해본다.

김선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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