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산을 찾아다니면 눈을 휘어잡는 형상을 만나곤 한다. 그중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닮은 형상에 눈길이 간다. 이런 형상에는 여러 전설이 깃들여 있다. 남근을 닮은 건 대개 바위이고, 여근을 닮은 건 폭포와 석굴이 많지만 간혹 봉우리도 있다.
민속학자 주강현은 책 에서 삼천리 방방곡곡의 유명한 남근석을 답사했다. 그는 남근, 남근암, 남근탑, 수탑, 성기바위, 미륵바위 등 다양한 호칭을 소개했다. 그 바위에 가서 빌면 남자아이를 낳는다는 남근신앙은 가부장적 남아선호 사상과 연결된다. 남근숭배신앙은 선사시대부터 남성의 성기가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신비한 힘을 소유하고 있다는 발상에서 비롯해 자손 번성, 풍부한 생산, 제재초복(除災招福)을 위해 숭배됐다. 산행 중 만나는 남근들은 하늘과 바람이 조각한 것이다.
남한에서 제일 잘생긴 남근석으로 충북 제천 동산(東山)의 것을 든다. 청풍호 동쪽이라 동산이다. 춤추는(舞) 바위(岩)의 절(寺) ‘무암사’를 들머리로 해서 바위 능선 구간을 거쳐 밧줄이 설치된 급경사를 오르면, 청풍호를 내려다보는 능선 끝자락에 남근석이 우뚝 솟아 있다. 건너편 작은 동산 자락 계곡에는 여근석이 있어 남근석에 호응한다.
경기도 오악 중 하나인 운악산 정상 남쪽 사면 아래 남근석도 유명하다. 가까이 접근할 수 없어, 먼발치에 전망대를 만들어놓았다. 정상에서 계곡 방향으로 내려가면 현등사(懸燈寺)가 있다. ‘악’자가 들어간 산은 보통 바위가 많다. 2016년 8월6일 몹시 더운 날, 노채고개에서 한북정맥을 따라 운악산에 올랐다가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남근석을 바라보며 기운을 얻고 내려온 적이 있다.
월출산은 남근석과 베틀굴이 호응한다. 남근석은 천황봉과 바람재 사이 능선에 있고, 베틀굴은 바람재에서 구정봉(九井峰)으로 오르는 정상 바로 아래에 있다. 남근석은 삼장법사바위라고도 한다. 뒤에서 본 모습이 삼장법사 뒷모습과 비슷하다. 베틀굴은 임진왜란 때 인근 여인들이 난을 피해 여기서 지내며 베를 짰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10m쯤 되는 깊이에 음수(陰水)가 고여 있고 모양이 여성의 성기를 닮아 음굴, 음혈이라고도 한다. 남근바위와 마주 봐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월출산 암봉들의 웅장한 기운을 중화한다고나 할까.
남근석은 보통 바위 능선 구간에 솟아 있으나, 관악산 파이프능선의 남근석은 그런 통념을 깬다. 계곡에서 막 벗어난 완만한 지역의 나무들 사이에 숨어 있다. 등산로 가운데 있어 더없이 편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밑동에 올라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여근을 닮은 폭포로는 설악산 흘림골의 폭포가 으뜸이다. 남설악지구 흘림골 어귀에서 약 700m 지점에 있다. 20m 높이의 폭포로 여심(女深) 또는 여신(女身) 폭포라 한다. 선녀탕에서 목욕하다 천의(天衣)를 잃어버린 선녀가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주전골 만불동을 넘어 이곳에서 나신(裸身)의 폭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맞은편에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전망대에서 폭포를 보면 중간쯤에 큰 엄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방동약수터에도 300년 이상 된 엄나무가 있는데, 어릴 때 가시가 있는 엄나무와 물이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모양이다.
주흘산 여궁(女宮)폭포도 이름 높다. 문경새재 제1관문인 주흘관을 지나 주흘산으로 가는 등산로를 800여m 오르면 혜국사 직전에 있다. 약 20m 높이의 바위들 사이에 좁게 파인 홈으로 수정같이 맑은 물이 좁고 길게 쏟아진다. 아래 물웅덩이를 마을 사람들은 파랑소라고 부른다. 일곱 선녀가 목욕하던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주변의 멋진 노송과 기암절벽이 어우러져 수려한 경관을 이룬다.
여근을 닮은 봉우리로 도봉산 여성봉이 가장 친근하다. 송추계곡에서 올라 만나는 첫 번째 봉우리다. 암봉의 모양새가 영락없다. 특히 한가운데 애처로운 소나무 한 그루가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절묘하다. 산행의 그윽한 묘미 중 하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만남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나를 놀라게 하거나 기쁘게 할 수 있다. 그런 기대감 때문에 매주 산을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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