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바위 끝에 위태롭게 걸린 암자는 그 자체로 훌륭한 경관이다. 팽팽한 긴장감을 주어 보는 이를 경건하게 한다. 사방이 터져 조망이 시원하기 때문에 그곳에 있는 이를 황홀하게 한다. 일출과 일몰, 월출과 월몰의 기운을 온전하게 받으며 감상할 수 있다. 일출 또는 일몰 시간대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거나 운무가 짙게 내리면 신선계가 바로 여기다.
조용헌 선생은 에서 이런 암자들을 명당으로 꼽았다. 바위에 포함된 광물질은 지자기를 지상으로 분출하는데, 사람 몸에 철분이 있기 때문에 바위에 앉아 있으면 지자기가 핏속으로 흐른다고 한다. 지자기를 받으면 몸이 건강해지고, 영성이 개발된단다. 혹자는 바위가 지구 중심부까지 연결돼 지구 중심의 기를 받는다고도 한다. 바위 위 암자 또는 암굴에서 면벽(面壁) 수도하는 고승들은 지구 중심의 기를 받는 것인가?
언제부턴가 절이나 암자에 들를 때 법당에 들어가 예불을 드린다. 종교적 차원이 아니라 정성을 다한다는 의미다. 교회나 성당에서 기도하거나 모스크에서 예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소망하는 것은 그때그때 다르다.
보리암이란 이름의 암자가 여기저기 있다. 보리는 깨달음 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도 과정을 의미한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이라 했다. 보리암은 ‘깨달음을 얻어 도에 이른 암자’란 뜻이다. 바위 끝 암자에서 수련하니 깨달음을 얻는 것은 시간문제다. 남해 금산 보리암과 영암 추월산 보리암이 대표적이다.
2012년 4월1일 남해 금산 보리암을 찾았다. 강릉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와 함께 관음신앙의 3대 성지로 이름 높다. 기암들이 경쟁하는 중에 남해 바다를 내려다보는 해수관음상과 암자가 절경을 이룬다. 보리암 주지이신 능원 스님이 우리 사무실 후배 권 변호사의 초·중학교 동창이어서 인사를 했다. 차 대접을 받고 30분 정도 대화를 나눴다. 헤어질 때 죽비를 선물로 받았다. 삶의 자세가 흐트러지려 할 때 성찰의 계기로 삼는다.
추월산 보리암은 그로부터 일주일 뒤 찾았다. 순창 쌍치재에서 시작해 북추월산에 오른 뒤 가인연수원, 수리봉, 추월산 정상을 지나 보리암을 경유해서 내려왔다. 암벽 위에 공간을 조성해서 암자를 지었다. 감로수의 맛이 매우 좋았다. 평상에 걸터앉아 내려다보는 담양호와 마주 보이는 금성산성 풍광은 절경이었다. 오후 4시 넘어 보리암에 들른 터라 등산객이 없었다. 요사채에서 여승 한 분이 나왔다. 나보다 젊어 보였는데, 어떤 사연으로 출가했는지 또 산중 생활은 어떤지 궁금했다. 붙임성이 없는 나는 인사도 못했다. 아쉬움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도솔암도 있다. 도솔은 미륵보살이 머무는 천상의 정토를 말한다. 달마산 도솔암과 선운사 도솔암이 대표적이다. 달마산 도솔암은 2014년 9월13일 땅끝기맥 종주하면서 들렀다. 두륜산과 달마산 중간 정도에 있는 닭골재에서 새벽 4시에 출발해 땅끝탑에서 오후 2시쯤 마무리했다. 도솔암에는 10시께 도착했다. 6시간 정도 걸어 몸이 피곤했고, 날이 더워지기 시작해서 목이 말랐다. 도솔암은 낭떠러지 암봉 위에 걸려 있다. 불상 하나 모실 정도의 공간만 있는 작은 규모다. 정면 맞은편에 바위가 병풍처럼 펼쳐 있고, 북쪽 방향에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고3 딸을 위해 신발을 벗고 법당에 들어가 예불을 드렸다. 스님이 주먹 2개 크기의 나주배를 주었다. 절을 했기 때문에 준다는 것이다. 고맙게 받아 깎아 먹으면서 4분의 1을 먼저 스님께 드렸더니 같은 크기의 배 하나와 포도 두 송이를 주었다. 그리고 샘에서 길러온 물까지 병에 가득 채워주었다. 마음을 드리고 또 마음을 받았던 아름다운 추억이다.
설악산 봉정암과 오세암, 지리산 상무주암과 도솔암 그리고 벽송사 서암, 경주 남산 칠불암, 구미 금오산 약사암 등 하룻밤만이라도 잠을 청하고 마음을 가다듬고픈 암자가 많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바람으로만 남아 있다. 왜 이다지도 여유 없게 살고 있는지? 보리암서 선물받은 죽비를 보며 무엇이 부족한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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