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금강산 사랑은 지극하다. 지옥에 안 가려면 죽기 전에 한 번은 금강산에 올라야 한다는 민간신앙도 전해온다. 금강산에 갈 형편이 못 되는 민초들을 위해 금강산도(金剛山圖) 민화(民畵)가 발달했다. 그림으로라도 금강산을 오르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남한의 산 가운데 기암과 계곡이 조화를 이룬 산에는 ‘소금강’(小金剛)이라는 별칭이 있다. 금강산을 찾기 힘든 남쪽 사람들이 가까이에서 금강산을 맛보려 여기저기 닮은 곳에 이름을 붙인 것이다. 금강산을 동경하는 선인들의 의지 표현이다.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소백산 등 금강산에 필적할 만한 산에는 소금강이란 명칭을 붙이지 않는다. 그 정도에 이르지 못하지만 바위와 계곡이 어울린 산에 붙인다. 소금강은 방방곡곡 널려 있지만 이상하게 소백두, 소한라, 소지리, 소설악은 없다.
소금강이라 이름 붙은 산과 골짜기는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강원도 오대산 노인봉 동쪽 계곡에 명주 청학동(溟州 靑鶴洞) 소금강이 있다. 여기에는 금강산의 상징 중 하나인 만물상이 있다. 전북 완주 대둔산은 남한의 산 가운데 금강산에 가장 근접한다고 해서 ‘남한의 소금강’으로 불린다. 금강산 일만이천 암봉을 축소한 것 같은 암봉들이 장관을 이룬다. ‘경기의 소금강’에는 소요산, 운악산, 관악산이 있다. 산 이름에 ‘악’ 자가 있는 운악산과 관악산은 ‘경기 5악’에 속한다. ‘충청의 소금강’으로는 홍성 용봉산, 보은 속리산, 괴산의 쌍곡구곡 중 제2곡이 있다. ‘호남의 소금강’에는 영암 월출산과 순창 강천산이 있다. ‘영남의 소금강’에 산청 황매산, 양산 천성산, 봉화 청량산, 포항 내연산, 거창 우두산, 울진 불영계곡 등이 있다. ‘남해의 소금강’으로는 남해 금산과 홍도 깃대봉이 있다. 남해 금산의 보리암은 3대 관음성지이다.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산들이다.
소금강의 암봉에서는 일망무제의 조망이 시원하다. 섬의 산에서는 바다와 섬들의 황홀경을 구경할 수 있다. 다양한 형상의 바위들은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암벽과 암릉 구간은 어지간한 나무가 자라기 쉽지 않다.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 소나무가 빛난다. 숲의 천이(遷移) 과정에서 관목(키 작은 나무·灌木)에 이어 침엽수인 소나무가 왔다가 활엽수가 오기 시작하면 열악한 환경으로 밀려나게 된다. 소금강은 암봉 구역이기 때문에 활엽수가 자라기에는 벅차다. 소나무는 바위틈에 자리잡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할 때인 2007년 6월19일 노인봉에서 청학동 소금강으로 내려갔다. 계곡을 따라 양옆으로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뤘다. 바위 봉우리 꼭대기에 고고하게 서 있거나, 암벽을 가르고 뿌리를 내려 위태롭게 서 있으면서 하늘로 곧게 솟은 금강송(金剛松)이 단연 압권이다. 여기에도 ‘금강’이 붙었다. 줄기가 곧고 마디가 길고 붉으며, 결이 곱고 단단해 켠 뒤에도 굽거나 트지 않으며 잘 썩지 않아 예로부터 궁궐의 대들보나 왕실의 관으로 사용됐다. 겨울에는 홀로 푸르름을 유지해 세한연후후조(歲寒然後後彫)의 기개를 드높이나, 푸른 여름에는 모든 나무가 쭉쭉 곧게 뻗은 수려한 자태로 기개를 자랑한다.
정수자 시인은 ‘금강송’에서 묘사했다. “군말이나 수사 따위 버린 지 오래인 듯/ 뼛속까지 곧게 섰는 서슬 푸른 직립들/ 하늘의 깊이를 잴 뿐 곁을 두지 않는다/ … / 설봉의 흰 이마들과 오직 깊게 마주설 뿐/ … / 붉은 저! 금강 직필들! 허공이 움찔 솟는다.” 이것이야말로 소금강 계곡이 만들어낸 골법의 직필일 것이다. 그러니 강인한 생명력의 결기에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선인들의 동경을 따라 소금강에서 금강산을 대신 경험하며 극락세계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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