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꾼들 사이 용어 중에 ‘알바’가 있다. 김별아 작가는 ‘헛돌이’라 했다. 예정했던 길에서 벗어나 다른 길로 가는 것을 말한다. 알바는 산행의 변수가 아니라 상수여서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 예정했던 길로 가기 위해 잘못 들어선 지점으로 되돌아오거나, 좀 돌긴 하지만 다른 길을 경유해 예정했던 코스로 마무리하고, 아예 코스를 변경하기도 한다. 초반에 깨닫거나 한참 지난 뒤 깨닫기도 하고, 하산한 뒤 깨닫는 경우도 있다.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없어져 길을 개척하며 가기도 한다. 눈 쌓인 겨울에는 등산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허벅지나 허리까지 눈에 빠지므로 한 걸음 한 걸음 신경 써야 한다. 길이 없어진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갈 때는 능선까지 오르거나 산언저리까지 내려가면 길을 만날 수 있다.
산악대장이 안내하는 산악회를 따라간다고 안심할 것은 아니다. 대장의 착오로 전체 일행이 초반부터 헛걸음을 하기도 한다. 2014년 9월13일 새벽 4시 땅끝기맥 마지막 구간을 타기 위해 닭골재에서 출발했다. 처음부터 정상적인 등산로를 찾지 못했다. 헤드랜턴을 켠 채 1시간 이상 길도 없는 덤불을 헤치며 나아갔다. 찔레, 두릅, 청가시덩굴 등 가시 있는 나무에 여기저기 긁혔다. 나뭇잎과 풀에 묻은 이슬방울 때문에 옷과 신발이 다 젖었다. 바지든 티셔츠든 등산복은 긴 것을 입어야 한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 가시덤불이나 풀밭 구간을 지나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풀밭도 맨살에 지나가면 여기저기 베인다. 어느 산악회는 이 구간에서 날이 밝은 뒤에야 반대쪽으로 진행한 사실을 발견하고 원래 계획을 변경해 두륜산 방향으로 산행을 했다고 한다.
나는 알바를 자주 하는 편에 속한다. 산악회 일행 사이에 500m 정도 거리를 둬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순간 알바를 해서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블로그 등을 통해 코스를 미리 숙지하고 산행지도를 준비하지만, 실제 상황은 전혀 다르다. 예상치 못한 갈림길에서 어긋나거나, 주의했음에도 엉뚱한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비가 오거나 날이 흐려 몇십m 앞도 보이지 않을 때는 특히 주의해야 한다. 자주 가는 산이라도 조금만 방심하면 길을 잘못 든다. 청계산 옥녀봉에서 화물터미널로 내려오던 중에 피곤하다는 이유로 봉우리를 넘지 않고 우회하는 길로 들어섰다가 정상적인 등산로가 없어 급경사를 구르듯이 내려와 엉뚱한 곳으로 하산한 적이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의 네이버 지도를 이용해 현재 위치를 확인하기 때문에 알바 하는 일이 훨씬 줄었다. 그래도 네이버 지도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갈림길을 지나치는 일이 종종 있다. 네이버 지도에는 등산로가 선명하게 표시돼 있지만 실제 사람이 다니지 않아 길의 흔적이 없거나, 아예 표시되지 않는 길을 가기도 한다. 2017년 5월3일 충북 괴산∼경북 문경 희양산을 찾아 폭포를 경유해서 오르기로 했는데, 네이버 지도에 있는 등산로가 실제로는 사람 다닌 흔적이 거의 없어 입구를 찾는 데 애먹었다. 그 길을 따라가다보니 어느 순간 길이 없어져, 할 수 없이 1시간 정도 나무를 헤치며 급경사를 올라 주능선에 닿았다. 뒤따르던 일행은 오랜만에 유격훈련을 했다며 한마디씩 했다.
알바를 했다고, 걷다보니 길이 없어졌다고 당황할 필요는 없다. 길은 누군가 처음 걸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내가 헤치며 나아가는 이 코스도 나중에 길이 될 수 있다. 오히려 길을 잘못 들었기에 뜻밖의 것을 만날 수도 있다.
인생도 알바를 한다. 알바는 인생의 상수이기도 하다. 등산과 인생에서 알바는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이다. 세상에 알려진 길에서 벗어났더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대처하면 오히려 새로운 만남과 경험을 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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