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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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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사를 마치다

험해서 아름다운 공룡능선

종주 끝내면 거사 끝낸 기분
등록 2016-10-19 12:29 수정 2020-05-02 19:28
5.1km 설악산 공룡능선은 등산에 입문한 다음 한 단계 도약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김선수 변호사는 2014년 9월6일 공룡능선을 네 번째로 올랐다. 김선수

5.1km 설악산 공룡능선은 등산에 입문한 다음 한 단계 도약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김선수 변호사는 2014년 9월6일 공룡능선을 네 번째로 올랐다. 김선수

전국 각지에 공룡능선이 있다. 울퉁불퉁 솟은 바위로 이어진 산줄기가 공룡의 등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름 자체가 주는 위압감과 함께 걷기가 수월치 않다. 공룡능선에서는 네 가지 점에서 놀란다.

첫째, 빼어난 아름다움에 놀란다. 암봉과 암벽의 수려한 개골미(皆骨美)가 절로 탄성을 자아낸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전체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물론 공룡능선 내 암봉과 암벽에서도 조망이 사방으로 시원하다. 진행하면서 내밀한 속살을 하나씩 들춰가며 들여다보는 짜릿함도 맛볼 수 있다.

둘째, 생명의 강인함과 경이로움에 놀란다. 아무것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삭막한 바위에서도 소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곧게 서 있다. 다양한 희귀식물이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셋째,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이 잘 나 있는 것에 놀란다. 멀리서 보면 뾰족한 바위들의 연속이어서 지나갈 수 있을까 생각한다. 막상 그 안으로 들어가면 등산로가 고속도로처럼 정비돼 있어 암벽등반 장비 없이도 종주할 수 있다.

넷째, 내가 종주했다는 사실 자체에 놀란다. 도저히 범접할 수 없을 것 같던 곳을 한발 한발 옮긴 결과 종주에 성공하면 거사를 해낸 자신에 놀란다. 그 희열 때문에 종종 공룡능선을 다시 찾아 힘을 얻는다.

설악산 공룡능선이 5.1km로 가장 길고 유명하다. 3~5시간 걸린다. 설악산 공룡능선은 등산에 입문한 뒤 자기 수준을 점검하고 한 단계 도약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공룡능선 입구까지 접근 거리가 멀어서 당일치기는 무리고 무박이나 일박으로 진행해야 한다. 설악산 공룡능선에 처음 도전할 때는 누구나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한다.

지금까지 네 번 찾았다. 2008년 11월2일, 2011년 9월3일, 2012년 7월21일, 2014년 9월6일. 찾을 때마다 감탄한다. 2011년 등반 때는 비가 내내 와서 아무것도 못 본 채 구름 속을 거닐었다. 구름 탄 신선이 되었다. 여름에서 가을 사이에는 한국형 에델바이스인 솜다리, 바람꽃, 솔체꽃 등 귀한 꽃을 만날 수 있다. 늦가을에는 빨간 열매를 맺은 마가목이 반겨준다.

“나무야 나무야/ 설악산 마가목아/ 새파란 하늘 아래/ 주렁주렁 탐스럽게 붉은 열매 매달고/ 멀리 동해를 굽어보는 마가목아/ 너희는 무슨 연유로/ 비바람 사납고 눈보라 매서운/ 공룡능선에서 사니?// 사람아 사람아/ 재앙스런 원숭이야/ 흰머리 검게 하고 성기능 높인다고/ 열매는 따가고 껍질은 벗겨가니/ 너희들 손길 발길 피해/ 막다른 곳까지 몰린 것인데/ 더 이상 어디로 피하라고/ 예까지 찾아오니?”(최두석, ‘공룡능선 마가목’)

공룡능선을 타는 것은 좋지만 그곳에 있는 돌, 나무, 풀 등 어느 하나에도 손대지 말고 그 자리를 지키도록 배려해야겠다. 공룡능선은 천성산, 신불산, 동악산 등에도 있다. 설악산 공룡능선보다 규모가 작아 대략 1시간 내지 1시간30분이면 통과할 수 있다.

경남 양산 천성산 공룡능선은 2012년 6월16일, 울산시 울주 신불산 공룡능선은 2013년 10월27일, 전남 곡성 동악산 공룡능선은 2016년 9월3일 찾았다. 천성산은 개인적으로 산림청 지정 100대 명산 등정의 마지막을 장식한 곳이어서 남다른 감회가 있다. 산행 마무리를 공룡능선으로 하산하려면 힘을 남겨둬야 한다. 바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살다가 힘이 빠지고 무기력해지고 생이 무의미하게 여겨질 때 공룡능선을 찾아보자.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지구 중심에서 올라오는 지력을 받고 척박한 바위에 뿌리박은 소나무에서 힘을 얻자.

김선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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