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산행의 마무리를 계곡물에 씻으면 금상첨화다. 산행 삼락(三樂)을 꼽는다면?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 후보로는 ①땀을 빼는 상쾌함 ②나무나 꽃과의 뜻밖의 만남 ③몸의 한계에 도전하며 자신과 대면하고 대화하기 ④계곡물에 씻기로 마무리하기 ⑤좋은 사람들과 뒤풀이로 마시는 시원한 소맥 ⑥돌아오는 차에서 꿀잠 등등. 나로선 삼락 중 하나로 꼭 꼽고 싶은 것이 계곡물에 씻기로 마무리하기다.
계곡물은 급류일수록 깨끗하다. 폭포수나 암반 위 옥류수라면 더 바랄 것 없다. 여름에 큰비가 내려 계곡을 한 번씩 뒤집어놓아야 계곡물이 깨끗하게 된다. 최근 가평에 있는 산을 찾았을 때 택시기사 하는 말이 몇 년간 큰비가 오지 않아서 계곡물이 맑지 못했는데, 이번 장마 때 큰비로 돌까지 구르게 하여 계곡물이 맑아졌다고 했다. 침전물까지 깨끗이 쓸어갔다는 것이다. 어디 계곡물뿐이랴. 세상사도 가끔 뒤집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깨끗해지고 발전한다.
산행하면서 부담 없이 땀을 흠뻑 쏟는 것은 계곡물에 씻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고생한 몸을 시원한 물로 씻어주면 피로가 말끔히 풀린다. 흐르는 물에 땀의 찌꺼기뿐만 아니라 정신의 미혹됨도 떠내려보내면, 속세로 돌아와 한 주를 버틸 힘을 얻는다. 지극히 실용적인 필요성도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귀가할 때 주위 사람들에게 땀 냄새를 풍기지 않을 수 있다. 서글픈 사실이지만, 나이 들수록 땀 냄새도 독해지는 것 같다.
산행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까지는 탁족(濯足)만으로 만족했다. 김영재 시인은 개울에 주저앉아 두 발을 씻으며 “굳은살 옹이를 키운/ 저 산에 큰절 올린다/ 발바닥 문지르면/ 거친 삶이 잡힌다/ 뚜벅뚜벅 걸었던 상처가 물살 가른다”(‘탁족 설법’)고 읊었다. 탁족은 내 발의 고단함만 씻는 것이 아니라 내 발을 지탱해준 저 산의 수고로움도 함께 씻는 일이다. 이런 관계를 생각하며 ‘개울에 주저앉아 두 발’ 씻을 때 풍요가 깃드는 진정한 즐거움에 든다.
황규관 시인은 “흐르는 물에 후끈거리는 발을 씻으며/ …/ 이 고단한 발이 길이었고/ 이렇게 발을 씻는 순간에 지워지는 것도/ 또한 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 씻겨 내려가는 건 먼지나 땀이 아니라/ 세상에 여태 남겨진 나의 흔적들이다/ …/ 오늘도 오래 걸었으니 발을 씻자/ 흐르는 물에 길을, 씻자”(‘발을 씻으며’)고 썼다. 길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발이 길이다. 따라서 발을 씻는 것은 길을 씻는 것, 발에 남아 있는 길을 씻는 것이다. 발을 씻는 것은 또다시 길을 만들고 걸을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기도 하다. 흐르는 물에 씻어야 한다. 흐르는 물이어야 깨끗하고, 또한 스스로 정화하면서 흐르기 때문이다.
산행의 경륜이 쌓이다보면 탁족만으로는 부족하고 온몸을 씻는 쪽으로 발전하게 된다. 산꾼들 사이에서는 ‘알탕’이라 한다. 온몸을 계곡물에 풍덩 던진다. 겨울에는 얼음을 깨고 냉수마찰이라도 해야 한다. 전신에 절어 있는 먼지와 피로를 계곡물에 말끔히 흘려보내 땅속으로 걸러내도록 한다. 이를 생략하면 애피타이저와 디저트만 먹고 주메뉴를 먹지 못한 식사처럼 허전하다.
대개의 명산은 좋은 계곡을 끼고 있다. 대간이나 정맥 등 산줄기를 타는 경우 계곡이 아니라 안부에서 마무리하나, 산행 코스를 짤 때 물 좋은 계곡에서 끝나도록 신경 쓴다. 모든 산행의 필수적인 마무리 코스가 되었다. 계곡물에 몸을 씻으며 자연의 일부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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