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서부극이 동부에서 미지의 서부로 향한다면, 토미 리 존스의 두 번째 연출작 (사진)은 흥미롭게도 서부에서 다시 동부로 귀환하는 행로를 따른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중심은 공동체의 질서를 구한 뒤 홀연히 떠나는 서부 사나이가 아니라, 여인들이다. 독신녀 메리 비(힐러리 스왱크)는 황량한 네브래스카의 환경 속에서 미쳐버린 마을 여자들을 무능력하고 폭력적인 남편들을 대신해서 고향 아이오와에 데려다주기로 결심한다. 서사의 동력인 그녀는 명석하고 씩씩하며 이타적이다. 그녀는 마치 황폐한 서부에서는 닻을 내릴 수 없는 이상적인 가치를 대리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을 다른 서부극들과 차별화하는 이러한 설정들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영화에서 우리를 사로잡는 기이한 영화적 기운은 실은 그 설정들과 배치되는 지점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영화가 중반을 지날 무렵, 여전히 한겨울의 힘겨운 여정을 지속하고 있는 일행이 밤을 보내기 위해 숲 속에 모여 있다. 일행 중에는 메리 비를 도와 험난한 길을 함께 이동 중인 떠돌이 사내 조지 브릭스(토미 리 존스)가 있다. 문득 메리 비가 간절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한다. 요지는 이렇다. ‘이 여자들을 모두 데려다준 뒤, 서부로 돌아가서 나와 결혼을 하자. 내게는 집도 있고 농장도 있다. 그리고 건강한 아이도 낳아줄 수 있다.’ 영화 도입부에서 그녀는 자신의 집에 들른 마을의 한 남자에게도 똑같은 구애를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이미 그 남자가 ‘당신은 매력도 없고 잘난 체만 한다’며 그 제안을 가혹하게 거부하는 모습을 보았다.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는 않지만, 조지 역시 메리 비의 끈질기고 절박한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메리 비는 나신으로 조지 앞에 서 있다.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만큼은 지켜달라고 애원하며 조지와 하룻밤을 보낸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조지는 숲 속에서 나무에 목을 매단 채 죽은 메리 비를 발견한다.
강인한 종교적 신념과 생에 대한 책임감으로 이 불가능한 여정을 이끌던 여인이 어떻게 이런 식으로 삶에서 퇴장할 수 있는가. 영화는 나무에 매달린 그녀의 주검을 별다른 감정적 동요 없이 물끄러미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다. 그 순간, 메리 비의 인간됨을 수식하던 경건한 용어들은 의미를 잃고 공허하게 흩어진다. 여자로서의 수치심이었을까. 서부로 돌아간다고 해도 (가족) 공동체를 이루기 불가능하다면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이 장면의 충격은 그 무엇으로도 그녀의 갑작스럽고 비극적인 죽음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온다. 다만 여기서 우리는 비로소 느끼게 된다. 은 피폐한 세계에서도 희미하게 살아남은 숭고한 인류애보다는 처절한 세속의 욕망과 단호한 단념에 더 가까이 있는 세계를 보여준다는 것을.
조지는 남겨진 여인들을 우여곡절 끝에 고향에 데려다준 뒤, 메리 비의 무덤에 세울 묘비를 들고 다시 배에 오른다. 그는 술에 잔뜩 취한 채 우스꽝스러우나 어딘지 처연한 몸짓으로 노래를 부른다. 그 사이 메리 비의 묘비는 강물 위를 떠내려가고 있다. 메리 비는 미래가 다가오기 전에 죽음을 선택했고 조지와 세 여인들의 미래는 결코 지금보다 나을 리 없을 것이다. 영화는 목적지에 도착했으나 그 무엇도 완수되지 않았다. 그러니 은 다시 시작하는 자들이 아니라, 끝을 알고 있는 자들이 견디는 실패와 체념의 시간이다. 또한 떠남과 돌아옴의 여정이 아니라, 길 위에서 죽고 길 위를 떠도는, 장소를 잃은 자들의 세계다. 토미 리 존스가 바라본 그 세계는 치열한 끝에 깊게 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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