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마무리됐다. 제임스 도노반(톰 행크스)은 자신이 변호했던 소련 스파이 루돌프 아벨(마크 라이런스)과 소련에 포로로 잡힌 미국 중앙정보국(CIA) 첩보 조종사 게리 파워스(오스틴 스토웰)를 ‘비공식적으로’ 교환해내는 데 마침내 성공한다. 이제 가족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 도노반과 파워스가 나란히 앉아 있다.
그런데 임무를 완수한 도노반이나 겨우 목숨을 건진 파워스의 표정에서는 안도감이나 환희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의 시선은 흔들리고 있다. 사건은 모두 종결됐지만 사건에 대한 이들의 감정은 무슨 이유에선지 해소되지 못하는 것 같다. 파워스의 경우는 짐작할 만하다. 미군의 입장에서 그는 자폭에 실패하고 국가를 위기에 빠뜨린 허술한 요원이며, 거듭되는 고문에 미군의 기밀을 소련에 넘겨주었을지도 모르는 잠재적 배신자다. 그는 다행히 살아남았지만, 평생 불안 속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도노반의 경우는 설명하기 쉽지 않다.
도노반은 지금 아벨이 떠나기 전 선물로 남긴 자신의 초상화를 물끄러미 보고 있다. 그림 속 도노반의 얼굴에서도, 그림을 보는 도노반의 얼굴에서도 그 표정의 의미를 추론하기가 어렵다. 아벨은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이 목숨을 걸고 자신을 끝까지 변호해준 도노반에게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도노반은 아벨의 시선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서 무엇을 보는 중일까. 그러니까 무엇이 도노반으로 하여금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일까.
이 장면 이후에 등장하는 엔딩 시퀀스는 이전의 서사적 갈등을 말끔하게 해결하며 인물들 모두에게 비교적 안정되고 행복한 결말을 제공한다. 하지만 매끈하게 가공된 엔딩 직전의 그 장면, 고향으로 귀환하는 두 남자의 모호한 얼굴이야말로 의 진짜 질문이 담겨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정의에 대한 도노반의 신념이 남달리 투철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변호사로서 ‘법 앞의 평등’을 절대적 가치로 믿는 자,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인간’을 믿는 휴머니스트, 결국 그것이 환상일지라도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미국적 가치의 수호자라고 말이다. 그러나 영화 안에서 그가 일련의 예민하고 위험한 사안들을 기꺼이 떠맡는 이유는 의외로 혹은 의도적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그는 노련한 보험 전문 변호사로 등장한다. ‘법 앞의 평등’이 아니라 자본의 안위를 위해 법을 어떻게 교묘히 이용할지의 문제에 더 골몰하던 변호사. 그랬던 그가 사랑하는 가족의 목숨을 담보하면서까지 급작스럽게 정치의 소용돌이에 뛰어든 이유를 단순히 올곧은 신념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도노반이 아벨과 대면하는 면회실 장면에서 아벨은 단단하고 의연한 목소리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는 우두커니 서 있는 도노반의 모습이 끝까지 오뚝이처럼 살아남았던 아버지 친구에 대한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고 말한다. 그 말에 특별한 의도가 있다거나 그 말이 도노반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보는 건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일 것이다. 다만, 그 순간 아벨을 쳐다보는 도노반의 자세와 표정은 되돌아갈 수 없는 다리에 이미 발을 들여놓았음을 알게 된 자의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는 강한 신념으로 인간을 구해낸 위대한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다. 의심 없이 행동을 시작하고 시작했으므로 끝까지 내달렸으나 행동의 동기를 스스로도 명확히 규명하지 못하는 자들이 여기 있다. 인간은 무엇 때문에 행동하는가. 는 세간의 평가처럼 이 질문의 답이 신념임을 보여줘서가 아니라, 이 질문을 끝내 진중한 물음표 속에 남겨두어 아름다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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