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과 (사진)이 1천만 관객을 돌파하자, 다수의 매체들은 흥행 원인을 두 영화의 소재 혹은 이야기에서 찾았다. 이렇게 정리해도 되겠다. ‘은 독립투사의 이야기이고 은 재벌과 이에 저항하는 소시민 형사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들은 지금 대한민국 현실정치의 빈곤함을 겨냥해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과 은 한국 사회의 현실을 환기하고 관객에게 대리만족을 주며 메시지 전달과 흥행에 성공한 영화로, 서로 유사한 맥락에서 자리매김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과 은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만든 오락영화다. 두 영화에 대한 관객의 충족감은 이들의 메시지가 아니라 폭력의 스펙터클이 주는 오락적 쾌감에서 비롯됐을 확률이 훨씬 높다. 그 스펙터클 자체나 거기서 야기된 쾌감이 잘못됐다고 말하려는 건 물론 아니다. 다만 우리가 그 폭력의 순간들을 즐길 수 있었던 이유가 ‘정의 대 불의의 싸움’이라는 서사적 맥락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건 솔직하지 않다. 무엇보다 그 주장은 개별 작품의 영화적 고유함을 읽어내는 데도 실패한 접근 방식이다.
두 영화는 다르다. 단지 다루는 내용의 차이가 아니라, 자신이 창조한 세계를 바라보는 영화적 시선의 차이 때문에 그렇다. 공교롭게도 과 에선 결정적 국면에 어린아이가 등장해 영화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그러나 그 장면들에 숨겨진 두 영화의 태도는 극명하게 나뉜다.
의 안옥윤 일행이 작전에 실패한 뒤, 사건 현장에서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은 일본 군인 카와구치와 재회한다. 그때 꽃을 파는 소녀가 불쑥 등장해 카와구치가 쏜 총에 맞아 쓰러진다. 이 장면이 주는 충격은 우리가 소녀에 대해 아는 바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소녀의 극적이고 급작스러운 죽음만을 보고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영화는 이 죽음이 왜 필요했을까. 대답은 명확하다. 소녀의 죽음은 일본군의 사악함을 재차 강조함과 동시에 하와이 피스톨이 독립군 편에 서게 될 계기를 마련해준다. 이 장면이 사악하다면, 그건 나쁜 일본군이 죄 없는 한국 소녀를 무참히 쏴서가 아니라, 소녀의 죽음이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무참히 기능적으로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야기를 추동하는 전능한 위치에서 소녀의 죽음을 그저 구경하고 있다.
에서 재벌가 아들 조태오(유아인)는 밀린 임금을 받으러 온 배 기사(정웅인)와 사태의 주범인 전 소장(정만식)에게 서로를 향해 주먹질을 하라고 명령한다. 조태오는 배 기사가 데려온 어린 아들을 붙잡고 아버지가 처절하게 맞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게 한다. 그때 대다수의 우리는 마치 결백한 아이의 처지에 놓인 듯, 용납할 수 없는 이 잔인한 장면을 어쩔 수 없이 보고 있다고 믿게 된다. 하지만 이 장면 이전과 이후에 등장하는 각종 폭력의 스펙터클을 마음껏 즐긴 우리가 이 순간에서만 괴로움을 느낀다고 토로하는 건 이상한 일 아닌가. 그 장면이 섬뜩한 이유는 거기 작동하는 영화적 시선이 폭력을 즐기는 조태오와 폭력을 강제로 지켜보는 아이 사이에서 위태롭게 흔들린다는 데 있다. 달리 말해, 이 영화는 폭력 바깥에 서서 그것을 선악의 구도 속에서 판정하며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무결한 위치에 두는 대신, 폭력의 스펙터클에 매혹된 자신의 시선을 위장하지 않는다.
에는 없으나 에 있는 것은 자신이 구축한 사태를 바라보는 바로 그 시선이다. 소재나 메시지의 ‘정치적 올바름’보다 중요한 건 영화가 자신의 세계에 어떤 방식으로 시선을 기입하는지의 문제다. 그 지점에서 우리는 최소한의 영화적 솔직함을 판별할 수 있다. 그 솔직함은 한 편의 상업 오락영화로서 이 성취한 영화적 활력의 쾌감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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