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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화를 한 번도 다 본 적이 없다

연재를 시작하며 - 영화에 틈을 내는 단 하나의 장면 혹은 순간을 찾아서
등록 2015-09-19 22:48 수정 2020-05-03 04:28
한겨레 김봉규 기자

한겨레 김봉규 기자

극장을 나서는 순간, 한 편의 영화는 당신에게 무엇으로 남는가. 누군가는 영화의 이야기에 대해 말할 것이고, 누군가는 캐릭터 혹은 배우의 연기에 대해 논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보자. 이야기라면 소설을 읽어도 될 일이고, 캐릭터나 배우의 연기를 보려면 텔레비전 드라마를 봐도 될 일 아닌가요? 질문을 이렇게 바꿔도 되겠다. 대체 무엇이 책도, 그림도,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아닌 영화로 당신을 이끄나요? 아니, 당신을 극장으로 유혹하는 ‘영화적인 것’의 정체는 무엇인가요?

정해진 답은 없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영화에 대한 글을 써왔지만, 이에 대해 해명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다만 이 물음을 붙잡고 영화를 대면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한 편의 영화가 얼마나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큼은 말할 수 있다. 다소 단정적이긴 하지만 이 연재를 다음과 같은 주장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영화적인 것’, 그것은 이야기나 캐릭터와 무관할 때가 더 많다.

관객 앞에서 감독과의 대화를 진행하다보면 흔히 듣는 질문이 있다. “이 영화의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2시간 가까이 펼쳐진 화면의 연쇄들을 단 하나의 메시지로 요약하라니. 사건의 발생과 해결이라는 이야기의 관습에 익숙해진 이들은 영화가 그렇게 정리될 때에만 무언가를 온전히 보았다고 안심하는 것 같다. 물론 최소의 서사적 틀 없이 영화, 특히 상업영화가 존재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야기의 틀이란 한 편의 영화를 지탱하게 해주는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똑같은 이야기를 두 명의 감독이 각각 찍는다면, 우리는 그 두 편의 영화를 같다고 말할 수 없다. 요컨대 숏의 배치, 카메라의 시선, 음악의 삽입 등에 따라 같은 이야기는 전혀 다른 세계로 탄생될 것이다. 그러니 이야기의 흐름에 일관되게 부응하는 인물의 행동이나 대사 혹은 사건만을 좇아간 우리의 시선은 영화의 앙상한 뼈대만을 읽어냈을 따름이다. 이야기의 단순한 틀로는 설명되지 않는 화면 위의 수많은 영화적 요소들에, 그러니까 이야기 이외의 것들에 영화적 비밀이 담겨 있다면 어쩔 텐가.

영화의 세계란 참으로 오묘한 것이다. 감독의 의도, 정치적 입장, 영화의 소재, 줄거리와는 무관하거나 심지어 배치되는 어떤 잉여의 장면이 그 세계의 진실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서사적으로 우리가 맞이한 해피엔딩보다도 그 끝에 도달하기 직전의 분열과 갈등의 장면이 그 세계의 심연인 듯 체험될 때도 있다. 그 순간들은 대개의 경우 이야기의 인과관계에 봉사하지 않는다. 현실사회에 대한 영화적 발언으로 즉각 환원되지도 않는다. 대신 영화의 안정된 이야기 틀을 미세하게 진동시키며 틈을 벌린다. 그 틈에 다른 어떤 매체에도 없는 ‘영화적인 것’이 있을 것이다. 그 틈을 체험하기 위해 필요한 건 이야기의 논리를 따라가는 머리가 아니라 본 것을 탐구하는 맑은 감각이다.

이 지면에서는 한 영화의 주제나 서사가 아니라 거기에 틈을 내는 단 하나의 장면 혹은 순간을 응시하려고 한다. 대부분의 우리들에게 사사롭게 취급되거나 이미 잊힌 장면, 그러나 그 순간이 바로 그 자리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한 편의 영화를 익숙한 이야기가 아닌 낯선 세계로 감각하게 해주는 그 장면. 예기치 않은 곳에서, 그러나 선명하고 풍요롭게 숨 쉬고 있을 수많은 잠재적 순간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 엔딩 크레디트를 뒤로하고 극장을 나서며 이제 다 보았다고 믿는 우리는 단 한 번도 다 본 적이 없다. 영화로 들어가는 문은 이미 거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끈질기게 찾고 또 찾아야만 한다고 믿는 당신과 이 여정을 함께하고 싶다.

남다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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