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간지 의 특종 탐사팀은 지난 몇십 년간 벌어진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스캔들을 추적 중이다. 사실을 은밀하고 철저하게 은폐해온 교회와 지역 권력자들의 오랜 공모에 부딪혀 이들의 취재는 속도를 내지 못한다. 그러던 중, 탐사팀의 일원인 사샤(레이철 매캐덤스)가 과거 성추행 전력이 있는 신부를 찾아가 만나게 된다. 성추행 사건의 진실을 묻는 사샤에게 노인이 된 남자는 더없이 투명하고 순진한 눈빛으로 답한다.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그래 맞아. 하지만 아무런 쾌감이 없었어. 나는 성폭행하지 않았어.”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에 사샤는 같은 질문을 거듭하지만, 대답은 똑같다. 사샤는 혼란한 얼굴로 돌아서는데, 그때, 저 건너편에서 아이들을 태운 통학버스가 보인다. 이 장면은 에서 가장 섬뜩하고 이상하다. 일말의 죄의식이나 방어기제도 없는 신부의 맑은 표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어지는 장면들에서 이와 관련된 어떤 논의도 없기 때문이다(사샤가 팀원들과의 회의에서 신부의 괴이한 태도에 대해 잠시 언급하지만, 그뿐이다). 말하자면 사샤와 신부의 장면을 보는 동안, 우리는 탐사팀의 취재가 가해자들의 비정상적인 심리를 파고드는 방향으로 진행될 거라고 여기게 되지만, 그 예상은 틀렸다.
는 엄밀히 말해 기자 개개인의 정의감에 사활을 건 세계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가해자들의 내적 동기를 궁금해하거나 피해자들의 고통에 감상적으로 동화하려 들고 사건을 대하는 기자들의 내적 갈등과 인간적 고뇌에 영화의 많은 부분을 할애했을 것이다. 그런 장면들이 아예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영화는 그 순간을 최대한 짧고 건조하게 스치고 지나간다. 대신 영화는 발로 뛰는 동시에 재빠르게 판단하고 상대를 읽는 동시에 이면을 직감하며 손에 닿을 듯 말 듯 잡히지 않는 어떤 진실과의 대결에 모든 주의를 집중하는 기자들의 ‘운동성’을 영화적 활력으로 전환한다. 이런 활동들의 연쇄를 대사 없이 유려하게 이어붙인 장면의 리듬은 이 영화에서 가장 생기로운 흐름이기도 하다.
탐사팀원들이 성추행 사건의 핵심에 거의 다다를 무렵, 9·11 테러가 터진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참혹한 현장을 지켜보는 기자들의 얼굴에는 놀라울 정도로 감정적 동요가 없다. 탄식이나 울음 따위는 여기 보이지 않고 곧바로 다음 사건을 향한 기계적이고도 민첩한 행동이 뒤따른다. 그들은 새로운 정글로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거의 다 잡아둔 이전 먹잇감의 추이에도 눈을 떼지 않는다. 대단한 사명감 때문일까. 그보다는 어떤 본능에 기인하는 행동으로 보인다.
그러니 당신이 에서 ‘기자 정신’을 보았다고 믿는다면, 그건 영화가 교회 권력을 폭로하는 기자들의 용감함을 보여줘서가 아니라, 그들의 멈추지 않는 움직임을 경험하게 해줬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를 폭로하겠다는 의지와 무언가를 선취하겠다는 욕망 사이에 있는 움직임의 본능. 기다리고 망설이고 의심하는 순간에도 멈춰지지 않는 그들의 끈질기고 지독한 활동과 흥분은 때때로 정의로 귀결되지만 종종 교활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래서 어딘지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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