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배에서 찍은 돛단배. 전호용
나 어느 해 여름이었다. 태풍은 군산 앞바다로 곧장 달려왔다. 만조시간과 태풍이 상륙하는 시간이 겹쳤다. 태풍이 밀어붙인 바닷물이 50년 전 쌓아올린 방파제를 허물어뜨렸다. 간척지가 물에 잠겨 이제 막 모가 올라온 벼논 수만 평이 침수되었다. 비바람에 집이 무너졌고 부러진 나무가 길을 막았다. 전봇대가 쓰러져 전력 공급이 중단되었다. 마을 어른들은 밤새 뚫린 방파제 보수 작업을 하는 데 열을 올렸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그날 밤 마을에는 아이와 노인들만 남았다. 지상은 어둠에 잠겼고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빛났다. 나는 그날 밤 처음으로 남서쪽 하늘로 펼쳐진 은하수를 보았다. 그리고 다음날 마을에는 다시 전기가 들어왔고 밤하늘의 은하수는 가로등 불빛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엄마 아들이, 큰아들이 5년 만에 집에 온다는 연락이 왔다. 그 아들 손잡고 우리 귀한 손자도 함께 온단다. 물 앉았을 때 갯가에 나가 바지락 캐고 톳도 따뒀다. 옆집 사는 조카는 우리 아들과 손자가 함께 섬으로 온다는 소릴 듣고 사돈 될 사람에게 보내려고 잡은 우럭 두 마리와 농어 한 마리를 놓고 갔다. 3년 묵은 광어젓 단지도 처음으로 열어 무쳐놓았고, 지난겨울 갯바위에 나가 뜯어두었던 파래와 김도 꺼내두었다. 배 들어올 시간 되어간다. 어서 와라 내 새끼. 어서 와라 내 손자.
나 고래를 대면하겠다며 무턱대고 나선 길에 어청도가 고향인 친구에게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친구는 “고래는 가을에나 돌아오지만 섬에는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친구의 막둥이 아들놈 손에 낚싯대를 들려 섬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배에 올라 먼 바다로 나서자 고래와의 대면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뱃전에서 먼 바다를 바라보며 솟구쳐오르는 고래를 그려보기도 했지만 넓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귓가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녀(여자친구) 이 남자. 한여름도 잘 견뎌내더니 그 끝자락에서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모양이었다. 하루를 쉬고 섬에 다녀오자는 제의에 월차를 내고 따라나섰다. 대마도로 가는 여객선을 타본 기억이 있지만 배와 바다는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이 남자가 옆에 있으니 되었다. 멀미약을 먹고 그의 무릎을 베개 삼아 누었다. 둥실둥실 바다 위를 떠간다. 햇살이 따갑다. 그가 손바닥으로 볕을 가린다. 감은 눈앞에 붉은 바다가 출렁거린다. 눈을 감고 그에게 물었다. 바다가 좋으냐고. 그는 대답했다.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어서 바다가 좋다고.
나 언덕 너머 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등대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그 해를 가르며 황포돛단배 한 척이 지나갔다. 그 배가 해를 가를 때였을까. 물고기를 낚지 못한 아이는 팔이 부러졌다. 친구의 어미는 아들과 손자를 위해 상다리가 부러지게 밥상을 차렸지만 두 사람은 입도 대지 못하고 끙끙 앓기만 했다. 여객선은 내일 정오에나 출항이라 밤새 그러고 끙끙 앓아야 할 판이었다. 보건소엔 부목과 붕대, 진통제만 구비되어 있다고 어린 공보의는 말했다. 할미는 손자의 손을 잡고 울고, 아비는 가끔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워물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나는 나대로 뭣하러 함께 섬에 가자 말했나 싶어 마음 한켠이 무지근하게 내려앉는다. 아비는 아비대로 자책이고 할미는 할미대로 자책이다. 이 먼 섬에 살고 있는 것 자체가 손자에게 미안할 노릇이다. 마을 부녀회장인, 친구의 사촌형수가 전화기에 대고 악다구니를 쓴다. 애가 이렇게 다쳤는데 해경이든 해군이든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친구 해가 저물고 섬마을에도 가로등 불빛이 들었다. 그 가로등 불빛 이겨낸 밝은 별들이 총총하게 빛날 무렵 해경에서 연락이 왔다. 어청도 인근에 순찰선 한 대가 있는데 그 배로 아이를 후송할 수 있다는 전갈이었다. 순찰선은 규모가 커서 어청도항에는 정박할 수 없으니 어선을 이용해 방파제 밖으로 나와달라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그녀(여자친구) 이 남자. 바다에 나갔다 돌아온 이 남자는 은하수를 보았다고 말했다. 이불 속으로 파고든 그의 몸이 차가웠다. 함께 가자고 말했으나 나는 밤바다가 무서워 집 안에 남아 있었다. 까무룩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해가 내려앉는 바다 위에 나는 떠 있었다. 저 멀리 하얀 등대가 서 있고 그 안에서 그가 손짓했다. 그가 나에게 온 것인지, 내가 그에게 간 것인지 모르겠지만 눈을 떠보니 그가 내 품에 안겨 있었다.
친구 섬에 남은 엄마에게 면목이 없어 전화를 못하다가 수술을 마치고 전화를 걸었더니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번을 해도 받지 않아 해 질 무렵이 되어서 다시 걸었더니 전화를 받는다. 왜 전화를 안 받느냐고 역정을 내자 어미는 대답했다. “바지락 캤다.”
나 늦은 아침까지 잠을 자고 일어나 친구 어머니 집으로 아침을 먹으러 올라갔다. 어젯밤 차려놓은 그 음식이 그대로 상에 올라왔다. 그 밥 한술 먹이지 못하고 그 밤에 그렇게 돌려보낸 어미이자 할미의 얼굴이 창백하고 꺼칠하다. 밤새 한숨도 못 잔 모양이었다. 그 아들에게 따라줄 소주 한잔 유리글라스에 가득 따라 나에게 건넸다.
“다음에 또 와라. 또 와. 엄마가 미안하다. 또 와. 응? 또 와.”
정오가 되어서 여객선이 떠날 때까지 사촌형의 배는 항구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은 고기를 좀 낚으셔야 할 건데. 그래야 아들에게 면목도 서고 며느리 될 처자가 더욱 예뻐 보일 건데….
은하의 가난한 물고기들은 이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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