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은 가장 완성된 형태의 유기동물 구조 활동이다. 올 추석 새 식구를 맞아 더 많이 웃게 되었다는 한 가족을 만났다. 할 얘기가 가장 많은 이는 죽을 고비를 두 번 넘기고 새 가족을 찾은 닥스훈트 월리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말을 하지 못하므로 월리의 가족 김숙정(46)·손유진(18)씨가 그간의 사정을 대신 설명해줬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해 월리의 목소리로 다시 쓴다. _편집자
지난해 추석을 돌이켜보면 1년 사이에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지난해 가을 이맘때, 나는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다. 심장사상충에 감염돼 치료를 받고 회복 중이었다. 하지만 약해질 대로 약해진 몸은 쉽게 기력을 되찾지 못했다. 심장사상충은 폐동맥에 기생하며 결국 심장을 공격하는 기다란 기생충이다. 감염 직후에는 증상이 없다가 3~4개월 뒤 서서히 몸을 망가뜨리는데, 배에 복수가 차고 몸이 붓는다. 숨 쉬기가 버겁고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
사람들의 셈, 안락사·동물실험…사람들이 나를 발견했을 때, 나는 이미 이 기생충에 감염돼 있었다. 내가 병에 걸려 주인이 버린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 버렸는지, 혹은 어쩌다 서로 엇갈려 길을 잃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나는 상태가 몹시 나쁜 채로 발견돼 시에서 운영하는 동물보호소에 보내졌다.
동물보호소에 입소한 동물 앞에 놓인 운명은 두 가지다. 살거나, 죽거나. 사는 경우는 원주인을 찾거나 새로운 입양처를 찾는 것. 죽는 경우는 자연사하거나 안락사당하는 것이다. 살거나 죽을 확률은 신기하게 거의 비슷하다. 2014년 기준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유기동물 처리 상황을 보면, 개인에게 분양되거나 원주인에게 반환돼 보호소에서 살아서 나간 동물은 3만6098마리로 보호 동물 중 44.4%, 자연사나 안락사를 한 동물은 3만7137마리로 45.7%다(표 참조). 나는 두 개의 길 중 죽음의 길에 더 근접해 있었다. 법정 공고 기간인 10일이 지나도 원주인이나 입양처가 나타나지 않으면 장기 수용 동물로 분류돼 실험동물로 보내지거나 안락사된다.
당시 7살이던 나는 나이도 많고 병까지 걸려 있으니 입양자가 선뜻 나타날 리 없었다. 나는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고 붙은 숨을 이어나갔다. 어느 동물병원에 보내진 나는 치료가 아닌 실험동물이 될 위기에 놓였다. 어차피 공고 기간이 지났으니 곧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죽을 처지였다. 그러니 약물이든 수술이든 이런저런 테스트를 당하고 죽으나 안락사를 당하나 죽긴 죽는다는 거다. 사람들의 셈이 그랬다. 심장사상충과 안락사, 동물실험까지, 나는 촘촘한 죽음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수술대에 올라 알 수 없는 테스트를 받는다는 공포는 나를 좀먹고 있는 심장사상충보다 더 무서웠다. 차라리 생이 어서 마감되었으면 싶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하루가 1천 일처럼 길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나를 임시로 보호해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나를 정식 입양하는 것은 아니지만 입양처가 구해질 때까지 내 생을 유예해줄 사람인 것이다. 심장사상충까지 치료해주겠다고 했다. 기력을 잃어 정신이 혼미했던 나는 천사인지 사람인지 헷갈리는 그의 품에 안겨서야 조금 안도했다. 아, 나는 살고 싶었던 거구나.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해를 넘겨 8살이 되었다. 올봄, 치료를 마친 나는 동물보호단체 카라를 통해 입양 공고를 다시 냈다. 이제 더는 아프지 않지만, 벌써 8살이나 된 나를 누가 가족으로 받아줄까. 여기서 입양이 되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1년 가까이 나를 책임져준 임시 보호자에게 언제까지 신세를 져야 할까. 길에서의 생활에 비하면 안락하기 그지없었지만 평생을 함께할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욕심이 자꾸만 생겼다.
사람들은 나의 탐스러운 털과 송아지처럼 순한 눈이 아름답다고 했다. 어느 날 내 눈과 꼭 닮은 사람들이 찾아와 나를 보고 갔다. 유진 누나가 마침 동물복지 문제를 고민하는 청소년들의 모임 ‘영(Young) 카라’ 활동을 하는 중이었다. 가족들이 누나와 함께 서너 번 단체를 방문해 새 가족이 될 동물을 찾았다. 원래는 다른 개를 가족으로 맞을 계획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의 일도, 개의 일도 한 치 앞을 모르는 법이다. 내 첫인상이 “너무 안쓰럽고 아파 보였다”고 말하는 숙정 엄마는 이내 나를 끌어안았다. 아빠(손영호·48)는 내가 너무 딱했다지만 입양을 강력히 반대했다. 다 자라 새 집에 와서 적응을 잘 할까, 원래 집에서 키우던 닥스훈트 거멍이와 잘 지낼까. 건강 문제는 또 어떻고. 심장사상충은 치료했지만 발견하지 못한 다른 아픈 곳은 없을까. 금방 이별하게 되면 그 슬픔을 어떻게 감당할 거냐며 3개월 가까이 고민했다.
눈이 닮은 우리는 결국 가족이 되었다. 너무 좋았다. 나와 끝까지 함께하겠다며 나를 꼭 안아주는 주인의 품에 내 길쭉한 코를 더 깊숙이 파묻었다.
“여기가 앞으로 내가 평생 살 집이란 말이지?” 도착하자마자 너무 신난 나는 꼬리를 흔들며 여기저기 탐색을 했다. 내 뒤에 나를 똑 닮은 검은 개가 지키고 선 것을 잊어먹을 정도로 신나게 돌아다녔다. 검정 닥스훈트인 거멍이는 가족과 8년째 함께 사는 개다. 거멍이가 나를 쫓아다니며 계속 소리를 질렀다. “메주처럼 누렇게 뜬 쟤는 누구냐. 빨리 우리 집에서 나가라.”
그렇게 일주일, 내 곁을 쫓으며 짖어대던 거멍이도 조금씩 마음을 열기로 한 모양이었다. 나와 친해진 거멍이는 누구보다 살뜰히 나를 챙겼다. 지금은 어른 손가락 두 개 정도 굵기로 통통한 내 꼬리가 그때는 병치레를 하느라 쇠꼬챙이처럼 앙상했다. 거멍이가 보기에도 그런 내가 딱했나보다. 주인이 사료를 주면 내가 먹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곤 했다. 다 안 먹으면 혼날 것 같아 부지런히 먹었다. 내가 방석에 누워 자면 거멍이도 같이 누워 잔다. 식구들이 모두 외출하고 나면 늘 밥도 안 먹고 문 앞에 엎드려 기다리던 거멍이가 내가 있으니 밥도 잘 먹는다. 우리는 때때로 장난을 치고, 서로 기대 자기도 하며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병원 가는 날이면 피가 섞인 오줌을…여름엔 여행도 다녀왔다. 개를 데리고 숙소를 잡고 여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가족들은 늘 캠핑을 다녔다. 강원도 속초에서 처음으로 바다를 봤다. 집에서는 아무래도 아직 눈치가 보여 마음껏 뛰기가 그랬는데, 해변에서 원없이 뛰었다. 한적한 바닷가에서 물에 발도 살짝 담가봤다. 이게 바다라는 것이구나. 그런데 거멍이는 넓고 푸른 물이 무서웠던 모양이다. 저만치 뒤에 서서 우리를 보고 한없이 짖었다. 빨리 나와! 파도가 집어삼킬 것 같다고!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행복한 눈으로 나를 바라봐줘서 좋다. 늘 조용한 형 희찬(15)은 말없이 내 등을 도닥인다. 엄마는 “새 친구를 사귀는 기분”이라고 했다. 우리는 서로 말이 통하진 않지만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지난 6월, 이 집에 와서 석 달을 보내며 나는 제법 이 생활에 적응했다. 하지만 때때로 아문 줄 알았던 상처가 쓰라릴 때가 있다.
정말 티를 내고 싶지 않았는데, 주인이 벌써 알아채버렸다. 병원에 가는 날이면 자꾸만 몸이 움츠러드는 것을 숨길 수 없다. 나도 모르게 오줌을 지렸는데 피까지 섞여나왔다고 한다. 실험견이 될 위기에 놓였던 병원에서의 시간이 굉장한 공포였나보다. 엄마 말에 따르면 순하고 착한 애들이 실험견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나는 사람이 좋다. 내게 손을 뻗으면 머리부터 들이밀고 비비고 싶다. 그 손 뒤에 수술용 매스며 부작용을 알 수 없는 약이 숨어 있는 줄도 모르고 그때는 그랬다.
남자 어른들도 무섭다. 남자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막대기 같은 것을 흔들면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다. 나는 누군가에게 학대당했던 걸까. 전 주인에게서? 길 생활을 하던 중에 만난 어른들이? 내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빠가 방에서 파리채를 휘두르며 모기를 잡는데 내가 구석에 숨어 벌벌 떨고 있었다. 엄마가 깜짝 놀라 나를 다독여줬다. 누가 숟가락만 들고 흔들어도 아직 무섭다. 이제 누구도 나에게 그런 걸 휘두르며 위협할 리 없는데, 여전히 엉덩이를 바닥에 딱 붙이고 꼼짝할 수 없다.
그분들도 나를 좋아해줄까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의 두려움도 조금씩 해결되겠지. 가족과 지내는 시간이 내가 길에서 지낸 시간을 넘어설 때쯤이면 상처가 새 살로 덮일까. 올 추석 처음으로 새 가족과 명절을 지내는 나는 양가 어른들을 뵈러 함께 귀경길에 오른다. 멀미가 심한 거멍이가 걱정됐는데 서울에서 1시간 남짓이면 가는 거리라 다행이다. 그분들도 나를 좋아해줄까. 사람들은 한가위가 되면 ‘오늘만 같아라’고 하던데, 나는 매일매일이 오늘만 같으면 좋겠다.
동물을 키우지 못할 형편이 되었거나 단기간 돌보기가 어려워졌다고 섣불리 길에 내보내기보다는 품앗이해줄 사람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박은주(33·가명)씨는 자주 지인들의 고양이를 돌본다. 지인이 긴 여행을 가거나 멀리 본가에 다녀올 때 그 집에 들러 고양이 밥을 챙겨주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또 다른 지인도 일 때문에 집에 자주 들어오지 못할 때면 늘 은주씨에게 에스오에스(SOS)를 청한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은주씨는 앞으로 어떤 사람과 함께 살아가게 될지 몰라서 동물을 선뜻 키우지 못한다. 대신 지인들의 동물을 돌보며 반려묘를 들이고 싶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해소한다.
최근에는 동물 돌봄 수요와 공급을 연결해주는 스타트업도 눈에 띈다. 가까운 지역의 펫시터와 반려인을 연결해주는 모바일 플랫폼 ‘페코’(peko)를 준비 중인 김대환(32)씨도 반려인이다. 지금은 고양이를 키우지만 과거 개를 키우면서 출장을 가거나 집을 비울 때 곤란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주인 부재시 반려동물을 가장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동물병원이나 호텔에 맡기는 건데 비용이 너무 비싸다. 보호 차원에서지만 내내 철창에 갇혀 있다 오는 경우도 많다.” 먼저 미국에서 인기를 얻은 ‘도그 배케이’(dog vacay)가 비슷한 서비스인데 반려동물이 장·단기로 머물 수 있는 호스트의 집을 찾아 연결해준다. 일종의 반려동물판 공유경제인 셈이다.
2014년 8만1147마리로 집계된 유기동물 수는 정점을 찍었던 2010년 10만1천 마리 이후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하지만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활동가 한희진씨는 “사설 동물보호소에 있는 동물, 길에서 구조되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 동물 등 실제 유기동물 수는 집계된 수를 훨씬 넘어설 것”이라고 말한다.
인구 규모를 고려할 때, 한국의 유기동물 수는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많다. 독일과 영국은 지난해 평균 7만 마리, 미국은 약 8만 마리로 집계됐다. 유럽에서는 동물 유기시 강력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독일과 영국은 동물 유기시 3천만원 이상의 벌금을 물린다. 국민 5명 중 1명꼴로 반려동물을 기르지만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은 아직 미비한 것이 우리 현실이다.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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