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동안 4천km 이상을 기차로 다니며 일본 전역의 위스키 증류소 취재를 다녀왔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산토리, 닛카 등 두 메이저 위스키 회사밖에 없는 줄 알았던 일본에 이미 중소 규모의 위스키 회사가 전국 각지에 산재하며 저마다 개성 있는 위스키 생산에 여념이 없다는 점이었다.
연초에 닛카의 창업자 다케쓰루와 그의 부인 리타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아침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서 일본은 위스키의 새로운 호황기를 맞았다. 특히 드라마의 무대인 홋카이도 요이치에는 증류소 견학을 오는 이들이 급증해, 예년의 연중 25만 명이 올해에는 상반기에만 50만 명을 넘어섰다. 돌아가는 그들의 손에는 다들 위스키 한두 병이 들려 있었으니, 닛카에선 지금 심각한 위스키 원주 부족 사태가 발생, 주요 브랜드의 잠정적 철수를 결정하는 한편으로 요이치·센다이 2개 공장의 생산설비 확충을 서두르고 있다.
야마자키(산토리), 센다이(닛카) 증류소는 스코틀랜드의 어떤 증류소에도 뒤지지 않는, 짜임새 있고 풍성한 무료 견학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한편으로 청주·소주 등 일본 전통주를 만들어오던 주조회사들의 위스키 산업 참여가 두드러진다. 가고시마의 소주 ‘사쿠라지마’로 유명한 혼보주조는 이미 1949년에 신슈마르스 블렌디드 위스키를 시장에 내놓았고, 간사이 지방의 유력 주조회사 에이가지마의 ‘아카시’라는 몰트위스키도 반세기 이상의 역사를 쌓아가고 있다. 일본의 한려수도에 해당하는 세토나이 바닷가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에이가지마의 입지적 아름다움은 스코틀랜드의 아일라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메이저 증류소를 포함한 10여 곳의 증류소 중 가장 인상에 남은 곳은 역사가 가장 짧은 지치부 증류소였다. 도쿄 이케부쿠로역에서 세이부신주쿠선 기차로 내륙을 향해 1시간30분, 지치부에서 하차 뒤 다시 택시로 20여 분 산중으로 들어간 곳에 ‘벤처위스키 지치부 증류소’가 있었다.
창업은 2007년. 아직 10년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현 창업자 히도이치로(50)의 조부가 300년 넘는 가문의 주조업을 발전시키려 위스키 산업에 진입했다가 경영난으로 도산한 것이 1980년대. 당시 대학에서 양조학을 전공한 뒤 산토리에 입사했던 손자 이치로가 세월이 지나 조부의 유지를 이어 새롭게 창업한 증류소다.
‘벤처’라는 단어를 굳이 앞에 넣은 것처럼 50대 젊은 사장의 일본 위스키의 새로운 지평에 대한 열의와 실험이 남다르다. 연간 일교차가 스코틀랜드의 2배에 가까운 탓인지 ‘에인절스 셰어’는 2배이고, 반면 숙성도 2배 가까이 빠른 점을 감안해 독자적인 형태의 캐스크를 고안하는 한편, 현재 스코틀랜드에서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몰트를 일부나마 일본산 보리를 사용, 전통 플로어링 몰트 제조 방식을 도입하고, 그를 위해 본인은 물론 직원들도 해마다 스코틀랜드에서 연수를 받고 있다.
연간 생산량은 9만ℓ 남짓. 현재 3개의 저장창고에 4천여 개에 달하는 캐스크가 잠자고 있다(사진). ‘이치로즈 몰트’란 레이블로 판매되는 몰트위스키의 시장점유율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통틀어 9만 병 정도가 출하된 것이 올해에는 이미 상반기 실적이 그 정도다. 특히 조부 시절에 증류했던 원액을 캐스크스트렝스로 발매한 ‘이치로즈 몰트 23년’은 시장에서 놀라운 호평을 받았다.
서울로 한 병 가져온 주력 레이블 ‘이치로즈 퓨어몰트’의 테이스팅을 천부의 미감을 갖고 있는 지인께 부탁했다. “맑고 강하고 화려하다. 시간이 좀더 흐른 뒤가 기다려지는 술”이란 평이 돌아왔다.
취재차 방문한 날은 마침 이치로 사장이 출장 중이었고,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공부 중 사장의 꿈에 이끌려 지치부로 오게 되었다는 젊은 여성 매니저가 공장 견학을 안내해주었다. 그녀에게 이치로 사장의 ‘위스키의 꿈’을 물었다. 장차 이치로 몰트 30년 숙성된 놈을 전국 각지에서 자신의 꿈에 동참해 지치부 증류소에서 함께 위스키를 만들고 있는 젊은 스태프들과 함께 마시고 싶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앞으로 20년 뒤에 실현 가능한 꿈이다. 그 꿈이 실현될 쯤에는 일본 위스키 산업의 지형도도 크게 바뀌어 있지 않을까 하는 짐작이 들었다. 이미 1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일본 위스키 산업. 그러나 여전히 청년이구나 하는 부러움을 갖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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