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각 중인 한 부대가 노상에 쓰러져 있는 아군 주검 몇을 발견했다. 폭염과 탈수와 허기로 쓰러진 듯한 그들의 얼굴은 이미 까마귀처럼 검었는데, 그중 하나의 맥이 아직 간당간당 붙어 있었다. “어이, 사끄레씨앙을 빨리!” 증류주의 일종인 그 술을 한 모금 흘려넣자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했던 병사의 눈이 떠졌고, 한 모금 더 마시게 하자 얼마 뒤에는 노새의 등에 올라탈 수 있었고, 다음날에는 원기를 찾아 이집트 카이로까지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다. ‘미각의 생리학’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미식평론가 브리야사바랭이 그의 책에 기록한 실화다.
‘위스키’란 단어는 본디 스코틀랜드의 고어인 게일어(고어라고는 하지만 현재에도 엄연히 사용된다. <bbc>에는 게일어 전용 채널이 있을 정도다) ‘우스케보’(usquebaugh)에서 ‘usqua’, ‘uskey’의 영어화 과정을 거쳐 지금의 ‘whiskey’로 정착됐는데, 그 뜻은 ‘생명의 물’이다. 위스키뿐 아니라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도 ‘오드비’(eau de vie)로 불렸고, 거슬러 올라가면 로마인도 ‘아쿠아 비테’(aqua vitae)라고 증류된 술을 불렀으니, 이는 모두 ‘생명의 물’을 의미한다.
와인·맥주 등 양조주와 달리 증류주가 ‘생명의 물’이라 불렸던 까닭은 그 제조 과정에서 ‘불’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일 터인데, 그 ‘불의 세례’를 일으키는 극적인 도구가 증류기다. 유럽에 개량된 증류기를 보급한 것은 8세기에 이미 유라시아 규모의 교역망을 자랑하던 이슬람 상인들이었다(증류기를 뜻하는 스페인어 ‘alambique’, 프랑스어 ‘alambic’, 영어 ‘alembic’은 모두 이슬람어인 ‘al anbiq’에서 왔다). 하지만 정작 이슬람 상인들에게 증류기를 전해준 것은 중국의 당(唐)이었다.
중국에서는 3세기 이래 불로불사의 약을 얻는다는 신선술이 도교의 연단술로 옮겨가면서 고도의 증류 기술이 발전해왔다. 당시 당과 활발하게 교역하던 이슬람 상인들에게 이 증류 기술이 전해진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이승의 영생이 아닌 내세의 천국을 믿는 이슬람 상인들은 불로불사의 약을 구한다는 것에는 애당초 관심이 없었고 대신 귀금속을 얻기 위한 연금술의 도구로 증류 기술을 발전시켰다. 이는 당시 팽창하는 글로벌한 교역망에 비례해 그 지급 수단인 금은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짐에 따른 경제적 사정에도 이유가 있었다. 결국 금은은 얻지 못했지만 화학에서 놀라운 발견을 얻어내는 한편으로 유럽에 옮겨진 이슬람의 증류 기술은 술과 결합해 증류주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14세기 중반(1347∼70년) 유럽은 중국 운남 지방의 풍토병이었던 페스트가 몽골의 네트워크를 따라 옮겨지면서 미증유의 대재앙에 휩싸이고 만다.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500만∼3천만 명이 페스트로 목숨을 잃었으니, 전 유럽은 완전히 패닉에 휩싸이고 말았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유럽인들이 매달린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증류주. 불을 붙이면 불꽃으로 타오르는 술의 정령이 신체에 활력을 주고, 페스트에 저항할 힘을 준다는 근거 없는 설이 유포된 것이다. 각지의 수도원에서 증류주에 각종 약초를 섞어 불사의 영약을 만드는 시도에 골몰한 것도 바로 이때다. 리큐르가 이렇게 시작됐고 증류주가 유럽에 뿌리를 내리는 슬픈 계기가 되었다.
술에는 우열이 없다고 생각한다. 취향이 있을 뿐이다. 다만 와인·맥주 등에 비해 위스키를 비롯한 증류주에는 ‘불’의 기운이 잠재돼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와인·맥주가 일상을 위로해주는 술이라면 위스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격려하고 응원하는 힘이 조금은 더 강하다고 할까? 먹고사는 문제보다 살아남는 것이 더 힘들다는 슬픈 자조가 유행하는 요즘, 소주이건 위스키이건 뜻이나마 ‘생명의 물’이라는 증류주에 손이 더 가곤 한다.
김명렬 자전거 여행자·‘바 상수리’ 마스터</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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