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해외로 위스키를 수출하며 매년 벌어들이는 돈은 약 25억파운드, 한화로 4조원 가까운 엄청난 액수다. 이슬람인들이 증류기에서 금을 뽑아내려던 연금술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그 와중에 그들이 개량을 거듭한 증류기는 유럽에 전파되며 아일랜드를 거쳐 스코틀랜드에 정착된 뒤 오늘날 황금의 물을 뽑아내는 또 다른 의미의 연금술로 완성을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코틀랜드의 토속주에 불과했던 위스키가 세계시장을 주름잡는 술로 성장하며 영국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과정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위스키를 대중화한 미국의 역할이 컸지만, 그에 앞서 팍스 브리타니카 시절(1815~1914), 특히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팽창 일로에 있던 빅토리아 여왕(재위 1837~1901) 시대에 런던의 주류 시장을 위스키가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세계의 길이 로마가 아닌, 런던으로 통하던 때, 그 런던을 매료시킨 위스키가 역으로 세계로 전파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위스키가 처음부터 런던 상류사회에 대한 구애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19세기 초반 런던의 조금 여유가 있는 이들이 마시는 술은 식중주로는 와인, 식후주로는 브랜디 일색으로, 우리 식으로 하면 주전자 들고 받아오는 탁주와도 같았던 위스키가 끼어들 틈은 어디에도 없었다.
물론 눈부시게 발전하는 산업혁명의 와중에서 스코틀랜드 위스키의 제조 환경도 급변하고 있었다. 우선 1830년 아일랜드 태생의 이니어스 코피가 연속식 증류기를 발명하며 비록 몰개성의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값싸고 신속하게, 대량으로 위스키를 제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1835년에는 에든버러의 주류업자인 앤드루 어셔가 서로 다른 연도의 몰트위스키를 섞어 좀더 나은 풍미의 블렌디드 위스키를 최초로 시장에 내놓았다. 간단한 듯하지만 놀라운 그의 시도는 시장에서 큰 반응을 얻었고, 당연히 그의 시도를 이어 과다 개성의 단점을 갖고 있던 몰트위스키와 몰개성의 그레인위스키를 섞어 양자의 단점을 보완하는 새로운 위스키, 즉 블렌디드 위스키가 ‘발명’됐다. 조니워커를 필두로 VAT69, Black & White, Teacher’s 등등 부드럽고 경쾌한 맛의 위스키 명주들이 줄을 이어 선보였다.
까다로운 런던 신사들의 구미에 맞는 위스키는 만들어졌지만, 입맛이라는 게 상당히 보수적이어서(게다가 런던 아닌가) 스카치위스키의 런던 시장 공략은 좀체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엉뚱하게도 역사의 장난이 일어난다. 1860년대 초반, 프랑스의 한 와인업자가 포도나무 개량을 위해 미국으로부터 들여온 묘목에 필록세라라고 하는 해충이 묻어 유럽에 상륙한 것이다. 미국 품종 묘목은 이 해충에 어느 정도 저항력이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유럽의 포도나무들은 그렇지 못했다. 너무나 신속하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프랑스의 와인밭은 물론이고 유럽 전역의 포도밭이 30년에 걸쳐 초토화돼버렸다. 이 피해를 복구하는 데 그 뒤 80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유럽의 와인밭에서 일어난 재앙은 런던의 식탁에도 옮겨붙었다. 와인이 생산되지 않으니, 와인은 물론 브랜디가 식탁에서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런던의 신사들이 눈을 돌린 것이 그때까지 사뭇 경멸의 눈초리를 보냈던 스카치위스키. 그러나 웬걸. 마셔보니 스카치위스키는 그들이 예전에 알던, 보릿겨 잔뜩 묻은 시골뜨기가 아닌, 런던의 사교계에 바로 데뷔해도 될 만한 세련된 여인으로 변모해 있지 않은가. 스카치위스키의 세계 무대에의 화려한 데뷔는 이렇게 필록세라라는 포도나무 해충이 마련해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역사의 재미있는 아이러니이다.
그 뒤 150년. 팍스 브리타니카는 지나갔지만, 그때부터 시작된 팍스 스카치위스키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데, 다만 요즘 들어 블렌디드 위스키의 세련된 맛이 아닌, 애당초 보릿겨 잔뜩 뒤집어쓰고 있던 시골 소녀가 알고 보니 개성 만점, 속 깊고, 청순하고,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보석으로 치면 원석과도 같은 아름다운 여인임을 발견하고 감탄하는 이들이 증가 일로이니, 이 또한 재미있는 술맛의 변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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