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키숄더’(Monkey Shoulder)라는 위스키가 있다. 위스키 제조 공정이 100% 수작업이던 시절, 그 공정의 첫 단계인 맥아제조(몰팅)는 물에 담갔다가 건지기를 수차례 반복(침맥)한 보리를 넓은 시멘트 바닥에 깔아서 일정 수준까지 싹이 자라기를 기다리는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이 상당하고, 30cm 정도로 쌓은 보리의 위아래 온도차가 큰 탓에 균등한 품질의 싹을 얻기 위해서는 보리를 수시로 뒤집어줘야만 했다. 1회 8~12t의 엄청난 양의 보리를 4시간 간격으로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편평한 목제 삽으로 끊임없이 뒤집어줘야 했으니 그 중노동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오랜 세월 노동을 감당한 이들의 한쪽 어깨는 당연히 비정상적으로 발달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형태가 마치 고릴라의 어깨와 같아 그 수고를 기려 붙여진 이름의 술이 바로 ‘멍키숄더’다.
물론 지금은 플로어몰팅을 고집하는 증류소를 찾아도 고릴라 어깨를 가진 직인을 볼 수는 없다. 목제 삽은 벽에 걸려 있을 뿐, 소형 경운기를 닮은 기계가 있어서 슬슬 밀기만 해도 보리가 손쉽게 뒤집어진다.
2차 세계대전 뒤인 1950년대 이후 위스키 산업에도 생산공정 자동화가 눈부시게 이루어져왔다. 연간 20만ℓ에 불과한 위스키를 생산하려 30~40명의 직인이 불철주야 매달리던 옛날에 비해 지금은 연간 500만ℓ의 위스키를 5명의 생산파트 직원이, 게다가 야간당직은 단 1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밤새도록 증류기에서 위스키가 쏟아져나오는 시대가 돼버린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컴퓨터와 자동화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하나에서 열까지 수작업에 의존하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위스키 생산 과정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을 담는 그릇’, 즉 목통(캐스크)을 만드는 쿠퍼(Cooper)다.
현재 스코틀랜드에서 사용하는 위스키 목통의 종류를 점유율순으로 보자면 아메리카에서 한 번 사용하고 버리는(법령으로 그렇게 정해져 있다) 버번 목통을 수입한 것, 그리고 갈수록 희소가치를 가지는 스페인산 셰리주를 담갔던 목통, 드물게는 와인 저장에 사용했던 목통이 있다.
쿠퍼가 하는 일은 우선 해체돼 수입된 버번 목통의 조각들을 위스키 목통 사이즈별로 맞추어 재조립하는 것이 가장 큰 부분이고, 그 밖에 목통의 노후에 따라 발생하는 각양각색의 손상된 조각들을 정교하게 교체·수리하거나, 수십 년 동안 위스키에 기를 빨려서 노쇠해진 목통을 분해해 표면을 갈아낸 뒤 다시 조립해, 내부를 다시 태워(re-char) 한 번 더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일 등등이다.
규격에 따라 잘라졌다고는 해도 목통용 길쭉한 조각은 나무의 특성상 하나하나가 미묘하게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 조각들을 물 한 방울 새지 않게 10여 분 만에 조립하는 숙련된 쿠퍼의 솜씨를 보면 ‘장인이란 저런 것이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쿠퍼리지(Cooperage)는 더프타운 글렌피딕 증류소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스페이사이드 쿠퍼리지’. 30여 년 전부터 견학 프로그램을 개발해, 지금은 위스키 트레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코스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1층 작업장 구역을 2층의 유리벽 너머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맛있는 위스키를 향만 맡고 맛을 보지 못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촉감이 없다고나 할까.
그런 아쉬움을 느낄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 스페이사이드 위스키 트레일 코스에 있는 키스(Keith)라는 마을에 숨어 있는 ‘아일레이 쿠퍼리지’(The Islay Cooperage)다. 10명 정도의 쿠퍼가 바삐 일하는, 일반 공개는 없는 조그만 공장이지만 정중하게 견학을 부탁하면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보았다. 그곳에서 비로소 쿠퍼의 일이 이런 것이구나, 만져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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