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한 옥션에 위스키 한 병이 출품됐다. 맥캘란 60년. 1926년에 증류되어 500ℓ 용량의 셰리버트 캐스크에 담았던 술인데, 1986년 병입할 때 보니 60년이 지나는 동안 스코틀랜드의 천사들이 야금야금 다 마셔버려 남은 것은 고작 25ℓ. 700㎖ 병에 담으니 36병밖에 안 나왔다는 전설의 위스키. 치열한 경합 끝에 경매인의 해머는 1만8천파운드라는 엄청난 가격 위에 두들겨졌다. 옥션 수수료가 10% 붙으니 최종 구입 가격은 약 2만파운드. 세상에는 위스키 한 병을 사는 데 물경 3800만원이라는 거금을 쓰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들판에 넘실대는 보리가 비싸봐야 얼마나 하겠고, 계곡에 흐르는, 공짜나 다름없는 물을 쓰면서 만드는 위스키에 매겨지는 이 무지막지한 부가가치는 도대체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
스코틀랜드 캠벨타운 스프링뱅크 증류소의 저장창고. 긴 세월 동안 통 안의 위스키는 자신의 몸을 조금씩 덜어 천사에게 드리고 대신 맛과 향과 색을 얻는다. 김명렬
위스키의 생산 과정을 들여다보면, 제맥(몰팅), 당화맥즙(매싱), 발효, 증류, 숙성(저장)의 커다란 다섯 공정 중 네 번째 단계인 증류까지는 전통적인 플로어몰팅(약 열흘이 소요된다) 방식으로 하더라도 2주밖에 걸리지 않는다. 제맥업자(몰스터)로부터 몰트를 구입하는 요즘의 방식으로는 단 4일이면 위스키 원액이 증류기에서 쏟아져나오는 것이다.
무색투명에 무취에 가까운, 70도 언저리의 거칠고 칼칼한 이 위스키 원액은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위스키인 것이 아니라, 그저 위스키를 향한 ‘가능태’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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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스코틀랜드에서 매일매일 위스키를 만드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단 두 가지인 셈인데, 오늘 만든 이 ‘가능태’를 목통(캐스크)에 담아 어두운 저장창고에 옮겨놓은 뒤 그 완성태의 개화를 다음 세대에 넘기는 것이 하나이고, 한편으로 과거에서 건네져온 목통을 세심하게 살피면서 가장 베스트인 맛의 지점을(여기서 12년이니 18년이니 하는 위스키의 연식이 결정된다. 통에 담을 때 미리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통 안에 담긴 위스키의 상태를 마스터블렌더가 끊임없이 체크하면서 “이놈은 지금, 저놈은 몇 년 더 묵히는 것이 좋겠군” 하는 식이다) 찾아 오늘 꽃피우는 것이 나머지 하나다.
위스키의 맛을 결정하는 요소가 ‘생산방식 4 : 저장 6’의 비율이라고 하는데, 그 가치를 결정하는 요소는 바로 생산에 드는 제반 수고가 2라면 숙성 저장의 부분이 8 정도가 아닐까. 위스키의 부가가치는 바로 긴 시간을 견디는 인내와 다음 세대로 생산물의 개화를 맡기는 신뢰와 배려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사족이지만, 한국에 위스키 산업이 없는 것은 바로 이 시간을 견디는 저녁과 내일을 배려하는 마음이 언제부터인가 거의 전무에 가까워진 세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가치를 얻는 데는 반드시 비용이 따른다.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장인들이 쓰는 비용 가운데 큰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에인절스 셰어’.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간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500만파운드, 얼추 100억원에 가깝다고 한다. 목통에 원액을 담은 첫해에는 신고식으로 조금 많아서 2~4%, 그다음 해부터는 1~2%를 해마다 어김없이, 10년 지나면 당초 분량에서 5분의 1 정도를 아낌없이 바치니, 위스키의 영롱하게 빛나는 호박색, 깊고 부드러운 향과 맛이야말로 바로 그 성의에 대한, 천국에서도 늘 얼굴이 불콰하게 술이 덜 깨어 있을 행복한 스코틀랜드 천사들의 상찬에 다름 아니다.
4월. 술잔이 1년 중 가장 무거운 달이 지나고 있다. 이 무거움은 우리가 매번 조금씩 치러야 할 비용을 치르지 않은 데서 부과된, 징벌적 추징금까지 잔뜩 붙어온 무거움이라고 생각한다. 이 엄청난 비용을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의 술잔도 영원히 가벼워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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