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트위스키의 수도’라고 불리는 더프타운 마을에는 조그만 위스키 박물관이 있다. 눈에 띄는 것 하나가 구리로 만든 플라스크. 가로·세로 30cm가 족히 넘는 초대형 플라스크를 보면서 과연 스코틀랜드 옛사람들은 휴대용 플라스크도 엄청난 것을 들고 다닐 정도로 위스키를 사랑했구나 짐작했는데, 실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 특대 플라스크는 산중에서 밀조한 위스키를 장터에 내다팔 때 길목마다 서슬이 퍼렇게 단속하는 잉글랜드 군인, 세리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부녀자의 배에 둘러차는 용도였다고 한다.
초창기 위스키의 역사는 징세와의 전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스키에 최초로 세금이 부과된 것은 1644년 스코틀랜드 의회에 의해서였으나, 세금이 그리 높지 않았고 단속도 미미했다. 그러던 것이 1707년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 완전히 병합되면서 1713년 몰트세를 시작으로 위스키에 대한 세금이 가혹해지고 단속도 심해졌다.
당시 잉글랜드에서 주로 소비하는 술이 브랜디에 포도주인데다 프랑스와 백년전쟁을 벌이는 와중이어서 전비 조달이 시급했다. 스코틀랜드 위스키는 절호의 징세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비교적 단속이 쉬운 롤랜드의 위스키 업자들은 눈물을 머금고 세금을 납부하기도 했으나, 하일랜드에서는 대부분 증류기를 노새 등에 얹고 산속으로 들어가버렸다. 밀주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게다가 롤랜드에서는 세금을 줄이기 위해 몰트 대신 다른 곡식을 섞어 위스키를 만들었으니, 밀조한 하일랜드 위스키는 값도 싸고 맛도 월등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잉글랜드가 손가락만 빨고 있을 리는 없었으니, 징세를 위해 군대를 파견하고 징세관도 대폭 늘려 단속을 강화했다. 그러나 단속에는 애당초 한계가 있었다. 우선 하일랜드는 잉글랜드의 점령을 마치고 진격해 올라온 최전성기의 로마군들도 더 이상 진격을 포기하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던 험준한 지형을 자랑한다. 밤에도 문제없이 산길을 넘나들며 위스키를 밀조·밀수하는 원주민 하일랜더들을 지리에 낯선 잉글랜드 군인들이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밀주 시대를 100년 넘게 해결 보지 못하는 가운데 잉글랜드 의회에서는 세금을 꼬박꼬박 내면서도 시장을 위협당하는 롤랜드 업자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당시 하일랜드 동북부 지역에 최대의 영지를 갖고 있던 고든 경이었다. 그는 상식적인 선의 세금 기준을 하원이 마련해준다면 자신이 나서서 하일랜드의 밀주업자들을 양성화하겠다고 하원을 설득했다. 그의 주장을 받아들여 ‘1823년 조례’(The 1823 Act)가 발효됐다. 이 조례에 따르면 40갤런(약 150ℓ) 사이즈의 증류기를 갖추기만 하면 누구나 고작 10파운드의 면허세에 갤런당 2실링 조금 넘는 세금을 내면서 합법적으로 증류소를 열 수 있었다.
그러나 대폭 경감된 조례가 발효됐다고 해도 선뜻 면허를 받는 이는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 하일랜드 사람들에게 밀주는 단순히 세금 문제를 떠나 잉글랜드에 대한 항거의 의미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고든 경은 자신의 영지를 흐르는 리벳강 계곡(글렌리벳)의 200여 명을 헤아리는 밀주업자 중에서 가장 빼어난 솜씨를 갖고 있으면서도 당시엔 드물게 약간의 교육도 받아서 리더십을 갖고 있던 조지 스미스라는 젊은이를 불러 간곡히 설득했다. 고든 경의 인품과 진심에 감복한 스미스가 면허를 취득해, 1824년 드디어 최초의 정부 공식 면허 증류소가 하일랜드에 탄생하게 되었다. 하일랜드의 위스키 산업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는 최초의 역사적인 증류소, 바로 ‘더 글렌리벳’이다.
한동안 동료들로부터 배반자 낙인이 찍혀 방화와 살해 등의 협박에 시달렸지만, 꿋꿋한 의지의 소유자인 스미스는 모든 난관을 헤치고 빼어난 위스키를 생산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글렌리벳의 성가가 스코틀랜드 전역에 퍼지면서 이번에는 여러 위스키 업자들이 그 이름을 무단으로 차용했다. 맥켈란-글렌리벳, 글렌파클라스-글렌리벳… 그 수가 수십 개를 헤아리면서 리벳강은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긴 강일 것이라는 농담도 생겼다. 결국 ‘글렌리벳’은 이 문제를 법원으로 가지고 가서, 이후 오직 최초의 글렌리벳만이 ‘The’라는 정관사를 쓸 수 있는 영예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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