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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와서 일만 하다 가려고?

일본 최초 자동차 테마파크 ‘메가웹’ 가봤더니… 스마트폰에 빠져버린 젊은 세대에게 아날로그 운전의 손맛을 선물하네
등록 2015-06-20 20:28 수정 2020-05-03 04:28

전철, 인터뷰, 전철, 인터뷰로 이어지는 강행군. 출장 중에 ‘꿀’ 같은 반나절이 빈다면 무엇을 택하겠는가. ① 숙소에서 쉬기 ② 인터뷰 녹취 풀기(녹취를 푸는 건 밥 먹고 설거지하기 싫은 것과 같다) ③ 캐리어에 든 책 읽기(안 읽으면서 출장 때마다 왜 챙길까) ④ 관광.
먼저 2번. ‘어찌 쉴 수 있나’ 하는 생각에 통역을 도와준 도쿄대 대학원생에게 물었다. “도쿄에 일하기 좋은 카페 어디 있나요?” “일하려고요? 도쿄에 와서 일만 하다 가려고요?” 그는 혀를 찼다.
그럼 4번. ‘그렇지. 일하다 죽은 기자 귀신이 붙은 것도 아니고.’ 팀장이 “출장 가서 구경도 좀 하고 오라”고 한 것도 생각났다. ‘팀장은 허투루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라이드 스튜디오’에서 아이와 아빠가 차에 오른 뒤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이완 기자

‘라이드 스튜디오’에서 아이와 아빠가 차에 오른 뒤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이완 기자

일본 최초의 자동차 테마파크 ‘메가웹’(MEGA WEB)으로 향했다. 자동차 테마파크라니 경제 담당 기자에게 ‘관광인 듯 일 같은 똑똑한 선택이다’라고 혼자 생각했다(소심남 인증?). 도쿄만 매립지인 오다이바 지역에 있는 메가웹은 도쿄 도심의 신바시역에서 전철 유리카모메선을 타고 아오미역에서 내리면 바로 연결된다. 도요타자동차가 만든 자동차 테마파크인 메가웹은 ‘도요타 시티 쇼케이스’ ‘히스토리 개라지’ ‘라이드 원’ ‘라이드 스튜디오’로 나뉜다. 1999년 3월에 완공돼 2012년 11월까지 네 번의 재단장을 거쳤다. 네 번째 재단장 전까지도 8천만 명이 찾은 관광명소다.

1층 ‘시티 쇼케이스’에는 새 차가 전시돼 있다.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자녀와 함께 자유롭게 자동차 문을 열고 타보는 게 인상적이었다. 국내 자동차 판매점은 ‘마트처럼 구경하듯’ 보는 게 사실 어렵다. 그곳에선 ‘나 진짜 살 거야’ 이런 생각 아니면 뒤통수가 따가운 느낌을 받는다.

극장도 있다. 4D 영화관처럼 좌석이 움직이게 설계된 극장에선 약간 흘러간 버전의 화면이지만, 비포장길이나 경주 등 신나는 운전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진짜 운전도 가능하다. ‘라이드 원’을 찾아 신청하면 하이브리드 자동차뿐만 아니라 수소연료전지차 ‘미라이’도 직접 몰아볼 수 있다.

2층에선 미래 자동차 기술을 엿볼 수 있다. 미래 자동차로 꼽히는 수소연료전지차를 분해해놓은 조형물이 먼저 눈길을 끈다. 한켠에 있는 자동차 경주 게임기도 꼭 해봐야 한다. 이 게임기는 휘발유 1ℓ로 얼마나 갈 수 있는지 일반 자동차 모드와 에너지를 아낄 수 있는 하이브리드 모드로 경험할 수 있다. 1ℓ만으로 운전하니 속도를 즐기는 어른보다 아이들이 더 길게 운전하기 일쑤다. 20분을 기다려서 탔는데 1분도 안 돼 내려오니 너무 아쉬웠다. 30분 뒤에 다시 가서 줄을 섰다. 직원이 또 왔냐고 물어보면 ‘니하오’라고 응답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교대한 직원이 서 있었다(소심남 또 인증?).

2층에서 나가면 ‘라이드 스튜디오’가 있다. 어린이를 위한 운전 체험 공간이다. ‘아이와 주말에 어디 가야 하나’ 고민하는 부모에게 이곳은 ‘천국’이다. 아이들은 놀이동산에서 보는 ‘카트’보다 큰 자동차를 운전하기 위해 잠자코 기다린다. 부모들은 안전요원이 운전의 ABC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카메라에 담았다.

최근 일본 자동차 업계의 고민은 젊은이들이 ‘운전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이다. 요즘 얼마나 재미있는 게 많나. 스마트폰만 붙잡으면 몇 시간도 그냥 보낸다. 오죽하면 한 자동차 업체는 최근 차 안에선 스마트폰과 잠시 떨어지라는 광고도 했다. 몇 년 안에 상용화될 것으로 보이는 자율주행 자동차도 운전의 재미와 필요성을 조금씩 뺏어갈 것이다.

이러다간 처음 자동차를 몰았을 때의 식은땀, 초보 운전 때 옆자리에서 잔소리하는 가족과 다툰 일 등의 추억은 점차 사라지지 않을까. 하지만 이 테마파크를 찾는 어린이는 운전의 시작을 가족과 함께한 추억으로 기억할 것이다. 자동차 테마파크는 그 나라의 자동차 문화와 기술이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그런데 이 글 쓰면 결국 난 논 게 아니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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