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수리취떡이네가 있습니다. 할아버지보고도 수리취떡이네 할아버지라고 하고 수리취떡이네 할머니 수리취떡이네 아들 수리취떡이네 손주라고 부릅니다. 그 집 식구들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무조건 수리취떡이네입니다.
1년에 5월 단오날이나 한 번 해먹는 취떡을 매일 주식처럼 해먹어서 붙여진 별명입니다. 사람들은 취떡이 먹고 싶으면 무슨 구실을 만들어 취떡이네 집에 지싯거리고 갑니다. 수리취떡이 할아버지한테 왜 하필이면 수리취라고 하느냐고 물어보는 척하고 가서 취떡을 얻어먹습니다. 옛날 단오 때 풍년을 기원하며 수레바퀴 모양의 절편을 만들어 먹던 나물이라고 하여 수리취라고 했다고도 하는데, 수리취떡이 할아버지 생각에는 취 잎이 크고 끝이 뾰족하면서 가생이는 톱니 같고 뒷면이 흰색이어서 바람이 불면 희끗희끗 날리는 것이 독수리의 날개처럼 생겨서 수리취라 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수리취떡이네가 취떡을 좋아하게 된 내력이 있습니다. 아주 윗조상 때부터입니다. 가족들이 천식이 심하고 감기를 달고 지내고 잘 체하는 아주 병약한 집안이었다고 합니다. 아들을 낳으면 비실비실 앓다가 죽기 일쑤고 아주 키우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어떤 의원이 수리취 나물을 많이 먹으면 병이 없이 튼튼해진다고 하여 수리취를 먹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병 없고 장수하는 집안이 되었답니다. 수리취떡이네 가족은 보통 사람들보다 덩치도 크고 튼튼하게 생겼습니다.
보솔산(보를 막느라고 소나무를 벌채한 산)에는 수리취가 일부러 심은 것처럼 많습니다. 큰 나무가 없으니 봄이면 수리취 잎이 바람에 희끗희끗 날려 수리취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떡취를 구분하기가 쉽습니다. 수리취떡이 할아버지는 80살인데도 보솔산 수리취를 누가 뜯어갈까봐 아침 일찍 산에 가 뜯어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열심히 기회만 있으면 어떤 방법이든지 써서 수리취를 모읍니다.
취를 넣고 떡을 하면 잘 굳지 않고 쉬지 않아 여름에도 3일 정도는 두고 먹을 수 있습니다. 취는 물을 많이 붓고 팔팔 끓을 때 소다를 약간 넣고 삶아야 물렁하고 새파랗고 곱게 삶아집니다. 취떡은 찹쌀을 충분히 불린 다음 시루에 찌면서 삶은 취를 꼭 짜고 짜고 또 짜고 아주 꼭꼭 짜서 찹쌀 위에 얹어 김을 올려 뜸을 들인 다음 암반에 쏟아놓고 떡메로 슬슬 문지르는 것처럼 시작하여 취와 쌀이 어우러져 튀어나가지 않을 정도가 되면 떡메로 퍽퍽 칩니다. 이때 여자들이 손에 물을 묻히면서 너무 넓게 퍼지지 않게 접어줍니다. 쌀알이 마들마들 남아 있어야 맛있습니다. 콩고물을 많이 묻혀 먹지만 단오 때는 송홧가루를 묻혀 먹습니다. 송편은 멥쌀가루에 취를 꼭 짜서 넣고 함께 빻아서 반죽을 만듭니다. 수리취떡이네는 빨간 팥을 삶아 넣고 큰 주먹만 하게 송편을 빚어놓고 간식으로 하나씩 먹습니다.
취떡을 자주 해먹다보니 웃지 못할 일도 자주 생깁니다. 암반이나 떡메나 취떡을 하기에 편리하게 항상 준비되어 있어서 심심하면 동네 사람들이 떡거리를 들고 와서 해먹습니다. 여럿이 모여서 서로 떡을 치겠다고 다투다가 떡 반죽이 떡메에 붙어 땅바닥에 털썩 떨어져서 흙을 뜯어내니 먹을 것도 없던 적도 있었습니다. 수리취떡이네는 취로 떡만 해먹는 것이 아니라 밥도 해먹습니다. 취를 삶아 깨끗이 헹궈 널어 말립니다. 바짝 마르면 방아에 풍풍 찧어서 부서트려놓고 밥할 적에 그냥 한 쪽박이 떠넣고 하면 됩니다.
아낙네들이 비가 구질구질 내리는 날이면 수리취를 뜯어 취떡이네 집으로 모여듭니다. 강냉이 가루나 밀가루나 그때 있는 대로 가져와서 수리취를 넣고 반대기를 해먹고 놉니다. 먹고 남는 수리취는 말릴 수 없으니 깨끗이 씻어 건져 독에다 짭짤하게 절여놓고 먹을 때 헹구어 삶아 떡도 하고 밥도 하고 무쳐도 먹습니다.
수리취떡이네가 절대 안 먹는 것이 있습니다. 꿩고기입니다. 취떡이네 할아버지가 취 뜯으러 갔다가 갈포기 밑에 꽁알이 있어 주워왔답니다. 삶아서 어린 손주까지 둘러앉아 먹으려고 다들 하나씩 들고 깠는데 꿩병아리가 거의 다 되어 있었답니다. 할아버지는 꿩한테 너무 미안하고 손주 보기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그때부터 꿩고기는 절대 안 먹고 겨울이면 꿩한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산속에 콩이나 곡식을 가끔씩 뿌려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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