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필리핀 여자는 다 한국 남자들 차지지.”
보트에 탄 필리핀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2012년 12월, 필리핀 코론이었다. 마침 ‘예쁜’ 필리핀 여성과 한국인 남성 커플이 함께 보트에 있었다. 어여쁜 코론 앞바다, 그의 푸념은 엔진의 굉음에 가려 그들에겐 들리지 않았다. 장년의 필리핀 사내는 그리고 물었다. “한국에 외국인 국회의원 있지?” 한국 정치 현실과 너무나 머나먼 아름다운 바다에서 기습처럼 받은 질문에 잠시 ‘뭔 말인가’ 했다. 다시 그가 묻자 떠오른 이름, 이자스민. “아…” 하자 사내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누구에겐 새누리당 의원이라, 누구에겐 이주여성이라 더더욱 입력되지 않았을 이름이다. 한국에선 논란의 인물이 필리핀에선 자랑스런 이름이 되겠구나, 잠시 바다를 보며 생각했다. 그러나 한 번도 그를 성소수자 등과 같은 배에 탄 소수자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1. 모든 아동은 존중받으며, 헌법과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등 기타 관계 법령에서 금지하는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받지 아니한다. 2. 아동은 국내에서 거주하는 동안 교육적·신체적·사회적·정서적·도덕적으로 건강하고 안전하게 성장하는 데 필요한 평균 수준의 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다.’
아름답지 아니한가. 법률의 일부라면, 더욱 아름답지 아니한가. 그러나 아름다운 문장의 주어인 아동 앞에 ‘이주’라는 단어만 붙이면 극심한 논란이 인다. 인용된 문구는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12월18일 발의한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안’의 3조 전문에서 ‘이주’만 뺀 것이다. 크리스마스의 선물 같은 법안에는 취지에 공감하는 새누리·새정치민주연합·정의당 의원 22명의 이름이 공동발의자로 올라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문구를 담은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 입법예고 사이트에 무려 1만4193건의 국민 의견이 달렸다. 의견의 절대다수는 “절대 반대” “결사반대”를 외친다.
“이자스민 의원의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안’은 불법체류 외국인이 한국에서 아이를 낳거나 아이가 5년 이상 한국에 거주했으면, 아이를 귀국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교육비·양육비·의료비를 100% 세금으로 지원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입니다. 불법체류자라도 자녀만 있으면 강제퇴거를 면할 수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해체를바라는국민연대, 남성연대,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등이 와 에 지난 1월19일 낸 의견광고의 일부다. 광고의 제목은 ‘이자스민·임수경 의원과 박원순 서울시장에 의한 「대한민국의 자살」’. 이 법을 ‘불법체류자 지원법’이라고 부르는 광고는 “혈통적으로 순수한 한국인은 사라질 것이라는 새누리당의 이자스민 의원”이라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외신 인터뷰 내용을 부적절하고 부정확하게 인용하고,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의 내용을 침소봉대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새누리당 의원은 우익단체의 공격 타깃이 되었다. 의무교육을 받는 미등록(불법체류) 이주아동의 경우, 한쪽 부모의 한국 체류를 허용하는 ‘출입국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임수경 의원도 광고에서 졸지에 “미성년 소녀와 결혼을 조장하는 임수경 의원”이 되었다. 이렇게 조직된 광고와 1만4193건 의견은 맥락이 다르지 않다.
양쪽이 ‘쉴드’쳐주지 않는 그녀“한국 정부가 이미 비준한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의 최소한을 담고 있어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이자스민 의원은 시민사회단체 ‘이주아동권리보장법 제정 네트워크’와 함께 법안을 준비했다. 비슷한 내용의 법안은 18대 국회에서 발의된 적이 있었지만 사장됐다. 재시도된 법제화에 이자스민이라는 이름이 붙자 반대의 불길은 거세게 일었다. 대한민국 헌법은 한국 정부가 비준한 국제협약을 이행하는 국내법을 만들도록 명시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황 변호사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도 접촉했지만, 가장 강력한 입법 의지를 보인 사람은 이자스민 의원이었다”며 “이주민 출신이라 오히려 공격받을 수 있어서 걱정했지만 가장 적임자였다”고 말했다. 미등록 신분일지라도 이주아동이 예측 가능한 삶을 살 권리를 보장하는 법은 어렵게 발의됐다.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의 제안 이유는 이렇게 시작한다. “법무부 통계에 의하면 2013년 2월 기준으로 합법체류 기간 만료로 인해 미등록 신분으로 전락한 19세 미만의 아동 수가 6천여 명에 이르며, 통계로 잡히지 않는 미등록 아동을 포함하면 현재 우리나라의 미등록 이주아동은 2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무려 2만여 명 아이들의 생존권이 달린 법안인 것이다. 혈통주의를 따르는 현행 국적법은 이주아동이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도 한쪽 부모가 한국 국적이 아니면 아동의 국적 취득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녀를 ‘쉴드’쳐주지 않는다. 새누리당의 안전망에 안주하기 않았기 때문이다. 극우 사이트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진보 성향의 오유(오늘의 유머) 사용자 상당수가 동시에 미워하는 그녀다. 그녀에 대한 편견에는 이주민 혐오가 응축돼 있다. 포털 사이트에서 그녀의 이름을 치면 “돌아가라” “해도 해도 너무하네요” 같은 말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 등을 통해 ‘불법체류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불법체류 아동에게 지원되는 교육비와 생활비를 “왜 우리의 세금으로 내느냐”고 따지는 것이다. 역지사지,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은 이자스민이 아니라 이주민을 향한 편견이다. 새누리당 지지자가 새누리당 의원을 공격하고, 새정치연합 지지자도 이주민 의원을 비난한다.
“현역 국회의원이 아들을 편의점 알바시켰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3월 초, 이자스민 의원 아들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담배를 훔쳤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일부에서는 이런 반응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소수 의견은 알려지지 않는다. 종합편성채널 MBN은 확정되지 않은 범죄 사실에 현역 의원 이자스민의 이름을 넣어서 보도했다. 숱한 인터넷 기사가 양산됐다. 해당 편의점 본사가 “담배가 분실됐지만 도난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해명하면서 해프닝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은 이자스민 의원과 아들을 비난하는 글로 가득했다. 한번 실추된 명예는 회복할 길이 없다. 이제 ‘엄마의 자격’까지 비난을 받는다.
“보수 개신교는 종북세력, 성소수자, 이주민 등을 ‘건강하고’ ‘건전한’ ‘대한민국 시민’이 아닌 존재로 타자화하면서 세금과 질병을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이자스민 의원은 이주여성이라는 점에서 이중으로 타자화된다. 이주민도, 여성도 ‘시민’ ‘주체’의 위치를 가지기 어려운데 이자스민은 이주민이면서 여성이고, 게다가 새누리당 의원이라는 점에서 ‘특혜’의 아이콘처럼 대상화된다.”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GP네트워크 팀장의 분석이다. 보수 개신교는 성소수자 공격에서 ‘에이즈’를 약한 고리로 공격한 것처럼, 이주민 비판에서 ‘불법체류’를 집중 부각한다. ‘항문섹스로 감염된 에이즈 환자를 위해 세금을 ‘낭비’하는 것처럼, 불법체류자를 위해서 우리의 혈세를 낭비하려 한다’는 혐오 논리다. 이들은 ‘선진국병’ ‘복지 지옥’ 등을 운운한다. 혐오의 확산을 추적해온 나영 팀장은 “이자스민·임수경 의원의 이주민 관련 법안에 대한 반대 서명은 차별금지법 반대처럼 보수 개신교 커뮤니티에서 빠르게 확산됐다”며 “‘학부모’ ‘어머니’ ‘여성’을 내세운 단체들이 강조되고 다문화반대, 남성연대 등 이름이 더해졌다는 점 정도가 다를 뿐”이라고 분석했다. 이렇게 계산된 편견은 “시민인 내가 열심히 일해서 낸 세금을 정부가 이주민·성소수자 같은 비(非)시민, 종북세력 같은 반(反)시민을 지원하는 데 쏟아붓고 있다”고 선동한다. 소수자 혐오의 주도 세력과 비난 논리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주여성이 불쌍한 존재로 나오면 동정한다. 그러나 이자스민 의원은 평범한 이보다 권력이 있다. 이러면 불편한 심리가 발동한다. 이주여성을 동등한 시민권을 가진 존재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사무처장의 분석이다. 나보다 아래에 있어야 할 사람이 위에 있으니 견디지 못하는 정서가 있다는 것이다. 제3세계(필리핀) 출신 여성 의원에 대한 불편함은 이자스민 의원을 ‘친일파’로 몰아가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애국의 반대편에 그녀를 세우는 것이다. 한동안 이자스민 의원을 향해 남윤인숙 새정치연합 의원이 제안한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국회 안 설립을 반대했다는 비난이 들끓었다. 이자스민 의원실 한 보좌관은 “기림비 건립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기림비를 광화문광장처럼 사람들이 많이 지나는 곳에 세우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을 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설사 그의 반대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주민이 아니라면 그토록 비난을 받았을까? 오죽하면 당도 다른 유승희 새정치연합 의원이 “이자스민 의원에 대한 가혹한 시선을 거둬주길 부탁한다”고 공개석상에서 당부했을까.
“공적인 삶을 살 용기를 낼까?”편견이 그녀를 몰아도 그녀는 숨지 않았다. ‘담배 파문’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이자스민 의원은 지난 3월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자칫 잘못 대응하면 억울한 일은 엉뚱한 일로 번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껏 그런 우를 범하지 않았다. 허오영숙 사무처장은 “이주라는 용기가 필요한 경험을 한 사람이어서인지 억울한 비난을 당해도 의연하게 대처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이자스민 의원은 이주여성의 롤모델”이라며 “그녀가 부당하게 공격당하는 모습을 보는 다른 이주여성이 공적인 삶을 살 용기를 낼 수 있을까”라고 걱정했다. 이주민에 대한 혐오와 편견은 특혜와 범죄 사이에서 춤춘다. 특혜를 받는 인물이라 ‘상상되는’ 이자스민 의원에 대한 비난과 몇몇이 관련된 강력 사건이 터지면 이주민 전체를 범죄자로 몰아가는 현실 사이에서 말이다. 지금, 이자스민에게 한 것이 이주민에게 한 모든 것이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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