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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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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숨막힌 느낌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잊지 않기 위해, 아픔에만 머무르지 않기 위해, 냉소하고 포기해버리기엔
너무 이르니까, 청춘은 책을 읽었다
등록 2014-12-25 15:03 수정 2020-05-03 04:27

지난 11월1일 곽승찬(고려대 생활도서관 운영위원)씨는 경기도 안산으로 향했다. 그가 찾아간 곳은 거대한 합동분향소였다. “그것은 가장 비현실적인 현실이었다. 검은 띠를 두른 액자가 너무 많았다. 거대한 제단 위에서 죽은 아이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476명 탑승-295명 사망-9명 실종-172명 구조. 숫자들이 전해줄 수 없는 죽음이 내 앞에 있었다.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몰랐다. 거대한 합동분향소에 익숙한 인간은 없다. 그곳에서 그 슬픔과 고통에 조금이라도 다가간 이는 쓰러져 오열하는 어머니밖에 없었다.”

<font size="3"><font color="#A48B00">가장 쉽게 추출되는 단어 ‘세월호’</font></font>

곽씨는 그날의 기억을 통해 를 이해했다. 어차피 ‘죽음 그 자체’에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은 산 자 가운데는 없다. 김애란·김연수·박민규 등 작가 12명이 기록한 ‘세월호’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를 올해의 책으로 뽑은 것은 “비현실 같은 현실을 기록한 이 12개의 세필은 ‘세월호’라는 사건의 부조리와 아픔을 영원히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

책과 삶이 이어지길 바라며 생활도서관 운동을 하는 20대와 시민행성·와우책문화예술센터가 뽑은 ‘올해의 책’ 10권에서 가장 쉽게 추출되는 단어는 ‘세월호’였다.

찰스 페로의 를 통해서 결국 “사고를 일으킨 시스템에 대한 고민 없이 개인에 대한 손가락질만 이어진다면 사고는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현정 고려대 생활도서관)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5·18 광주민주화항쟁이라는 아픈 기억을 소재로 한 한강의 소설 를 읽으면서도 ‘세월호’라는 아픔을 직시하는 과정을 놓지 않는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단순히 아픔으로 머무르기를 거부하는, 사건의 불가해함에 대해 끊임없이 탐색하겠다는 충실성을 보이는 일이다. 동시에 생존의 문제와 함께, 또 그것을 넘어서는 인간에 관한 물음을 근원적인 지점까지 살피는 일이기도 하다. 한강의 소설 에서 바로 그와 같은 작업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확인할 수 있다.”(시민행성 김태선 문학평론가)

세월호가 아니더라도 20대의 촉수에 닿은 세상은 버겁다. “학교 커뮤니티 취업 게시판에 가면 ‘스물여덟이 넘은 문대 여학우라면 9급 공무원이나 교대 재입학만이 답’이라고 일러주는 세상이다”(양해은 연세대 생활도서관), “길을 걷다가 문득 스스로 가슴을 퍽 하고 치고, 욕지거리를 내뱉기도 한다. 밤이 되면 이불을 걷어차며 이를 간다. 미친 사람은 아니고, 올해 나와 내 친구들의 증상이었다. 누군가를 향한 것은 아닌데 이 숨 막힌 느낌은 대체 무엇이었을까?”(희윤 서강대 생활도서관), “‘문학의 쓸모’ 세미나를 하지 못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과외를 하러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청춘(허자인 서강대 생활도서관)도 있다.

<font size="3"><font color="#A48B00">‘노답’이란 말이 유행하는 시대</font></font>

이런 세상과 대면한 이들은 책에서 답을 찾는다. “내가 가진 정체성의 편리함은 타자성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철저히 곱씹음으로써 사회 변혁을 시작할 수 있”으므로 “복잡하게 얽힌 위계 속에서 사람과 사람 간의 역동을 섬세하게 읽어낼 눈을 기를 수 있도록”(양해은) 우에노 치즈코의 를 읽는다. 바티스트 밀롱도의 은 “기본소득이 있었다면 너무나 고통스럽게 하는 과외를 그만두고 교내 학회 세미나를 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더 고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배고프게 노래했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고기반찬을 한 번 더 먹으며 오랫동안 자기만의 음악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허자인) 상상하게 한다.

사회적 상황을 포착해 해석한 책들을 통해 그 상황을 뚫고 갈 해법을 찾는다. 엄기호의 는 그런 책이다. ‘단속사회’는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하는 사회다. ‘언제 어디서나’ 사람과 사람을 이어대는 디지털 시대에 취향과 정치적 입장·가치관 등이 비슷한 사람의 이야기만 듣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배제하는 사회가 지금이다. 이승찬(서강대 생활도서관 활동가)씨는 “‘노답’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도 결국 ‘노답’으로 규정된 사람이나 단체 또는 일련의 상황을 이해하고 설득하려는 의지 자체를 포기하기 때문”이라며 “저자의 말대로 다시 한번 경청하고 소통해야 한다”고 책의 메시지를 강조한다. “‘노답’이라는 말로 냉소하고 포기해버리기에는 너무 이르다.”

이들이 읽고 꼽은 책들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기반해 있다. 한나현(서강대 생활도서관 활동가)씨는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을 해온 경남 밀양 할매·할배를 비롯한 주민들의 목소리를 오롯이 담은 를 읽고 ‘차가운 국가와 자본’을 곱씹는다. “사계절 내내 열매며 땔감을 구하러 다니던 산이 하루아침에 망가질 때, 평생을 두고 마련한 집과 농지에서 내쫓겨야 될 때 이 땅과 함께해온 사람의 삶은 한순간에 무의미하게 되어버린다. 삶을 지키려는 노력은 불법으로 규정된다. 한전과 국가가 저지른 폭력은 사람의 삶에 대한 어떠한 존중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곳곳에서 이러한 장면들과 마주친다. 그래서 밀양 주민들은 쌍용자동차 노조 농성장에, 세월호 집회에 찾아간다.”

<font size="3"><font color="#A48B00">이 땅에서 벌어진 사건과 호흡하다</font></font>

2008년 벌어진 민주노총 간부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 성폭력 사건 이후 은폐와 고난의 5년을 기록한 에서 양해은씨는 파시즘을 읽었다. ‘개인적인 감정 문제로 조직의 분위기를 흐리면 안 된다’는 논리에서 추출되는 파시즘이다. 양씨는 “는 희생을 강요하는 모든 시대, 전체주의, 국가주의, 제국주의, 패권주의가 존재하는 모든 땅의 책”이라고 말했다. “노동조합이 살기 위해 구성원의 피해가 외면당했다던 시대뿐 아니라 도 전체의 원활한 전기 수급을 위해 지역 주민들을 내몰고 송전탑을 건설하는 시대, 나라의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 모든 가임기 여성은 일단 출산하라는 시대, 기업이 살아야 나라도 살기 때문에 무조건 노동조합이 잘못했다는 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창조적으로 월화수목금금금 야근하는 땅”의 책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2013년에 출간됐지만 2014년에 호출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20대가 불러낸 ‘올해의 책’은 이 땅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사고들 위에서 그들이 호흡하고 있고, 아파하고 있음을 증언한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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