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학자 윌리엄 뮤어는 생산성이 높은 암탉은 어떻게 길러지는지 실험한 일이 있다. 한 우리엔 생산성이 높은 암탉들을 자유롭게 놓아두고 다른 우리에는 여러 집단에서 그중 가장 알을 잘 낳는 닭들만 골라 채웠다. 여섯 세대가 지난 뒤에 보니 자유로운 무리는 여전히 포동포동한 닭들로 붐비고 우리엔 언제나 달걀이 꽉 채워졌다. 그런데 슈퍼 암탉만 모인 집단은 서로 산란을 방해하려고 쪼아대고 공격하느라 죽고 3마리만 남은데다 남아 있는 닭들의 상태도 온전치 않았다.
생존을 위한 투쟁만이 적자를 만들어낸다는 우리의 믿음은 옳았을까? 이런 믿음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선택적 진화론’ ‘게임이론’ 등이 토양을 제공하고 ‘세상을 바꾼 CEO’나 위대한 과학자에 대한 신화가 거름을 주었다. 책 (마거릿 헤퍼넌 지음, 김성훈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은 그 결과 인류의 지성은 풍요롭기보다는 빈곤하고 위태해졌다고 지적한다. 과학계에선 “최고의 10%를 (미리) 가려내는 일은 수정 구슬이나 타임머신이 없는 한 불가능하다”는 말이 있다. 세상을 바꿔놓을 사건이 일어나려면 아주 작은 통찰이 수없이 쌓여야 하고, 그중 누가 그 열매를 따먹을 것인지는 우연히 찾아오는 결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쟁이론에 따라 소수에게 권력을 집중한 결과 대부분의 학술지들은 명맥을 유지하기도 어렵게 됐고 연구자들은 하나같이 논문 발표계의 스타가 되기 위해 뛸 뿐, 과학공동체의 지식 수준은 점점 궁핍 상태에 이르고 있다는 진단이다. 게다가 모두가 성공담만 내세울 뿐 실수와 정보를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을 기회나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는 일과는 점점 멀어진다.
2013년 초 미국 하버드대학은 100여 명의 학생에게 자퇴 권고를 내렸다. 집에서 치른 시험에서 비슷한 답을 써낸 학생들이다. ‘경쟁 히스테리’는 경제위기에 청년실업까지 겹쳐서 다른 나라에서도 교육이 승리와 패배를 가르는 기준점으로 자리잡게 했다. 하지만 책은 경쟁을 통해 길러진 많은 젊은이들은 부정행위가 이미 몸에 배었거나 내적 동기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깃털 몇 가닥만 남은 앙상한 암탉과 다를 게 없다는 사실도 폭로한다.
책은 “경쟁은 비밀 유지를 유도하고, 투명성을 저해하고, 정보의 흐름을 막고 공유하고 협력하려는 욕구를 꺾어놓으며 결국 범죄를 부추긴다”는 점을 누누이 지적한다. 경쟁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비밀 정보를 이용해 돈을 버는 내부자거래의 유혹에 더 잘 넘어간다는 점을 밝혀낸 연구도 있다. 대안은 무엇일까? 비생산적인 경쟁과 방어 본능을 자극하는 대신 인간이 종으로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협력 본능과 자부심을 일깨우는 일이다.
남은주 문화부 기자 mifoc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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