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컴컴한 새벽 작은 어두니골에 사는 대목 할아버지가 싸리 빗자루를 한 짐 지고 오셨습니다. “할아버지 이렇게 일찍 어떻게 오셨어요?” 하니, 이때쯤이면 고등어머리찌개를 해먹을 때가 된 것 같아서 오셨답니다.
우리 집은 타작이 끝나면 타작날에 떼어두었던 자반고등어의 머리를 이용해 별미로 찌개를 해먹습니다. 그렇다고 오늘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대목 할아버지가 그냥도 안 오시고 겨울에 눈 쓸 싸리 빗자루를 한 짐 지고 오셨으니 갑자기 고등어머리찌개를 하느라 바빠졌습니다.
서리가 내려 을씨년스러운 아침에 나는 무를 뽑아오는 당번이 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무밭에 가면 머리 부분이 파랗고 둥글둥글하니 통통하게 아주 잘생긴 무들이 팔을 있는 대로 벌리고 반겨줍니다. 어머니는 무를 마구 뽑지 말고 잘 살펴보아서 세 번째쯤 큰 것으로 골라 뽑아오라고 하십니다. 크고 좋은 것은 김장할 때 먹어야 하고, 또 좋은 것부터 먹어치우면 못산다고 하셔서 무밭을 잘 살펴봅니다. 세 번째 큰 것을 고르는 일도 힘들지만 무를 뽑는 것이 무한테 무척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싱싱한 무는 뽑으려 하면 움칫 놀라며 움츠러드는 것 같아서 용기 내어 뽑습니다.
밭에서 다듬어 가지고 가면 한 번만 날라도 되지만, 무 꽁지나 떡잎을 소·돼지·닭에게 주려고 무겁지만 여러 번 날라 집에 와서 다듬습니다.
잘 씻은 무는 수저 입만 하게 도톰하게 썰어서 고춧가루와 조선간장, 들기름, 파, 마늘로 양념해 물 한 동이들이 무쇠솥에 무 한 켜 깔고 고등어머리 드문드문 올리고 무 깔고 고등어머리 올리고 무 깔고 고등어머리 올려 안치고 양념 묻은 대야에 물을 붓고 새우젓을 약간 풀어 무쇠솥 가장자리로 무가 풍덩 잠길 만큼 돌려 붓고 뚜껑을 덮습니다. 불을 세게 때서 잠시 동안 버글버글 끓이다가 불을 줄여 은근하게 한참을 끓입니다.
썰렁한 아침에 멀리까지 아주아주 맛있는 냄새가 납니다. 고등어머리로 끓인 찌개는 몸통을 넣을 때보다 아주 깊은 국물 맛이 납니다. 무잎은 물렁하게 삶아서 무쳐 반찬으로 내놓습니다.
어머니가 아침밥을 하시는 동안 발 빠른 작은오빠보고 아랫마을 아저씨네와 어른들만 모셔오라고 했습니다. 제일 연세 많은 할아버지 집에 갔더니 안 계셔서 오신 분들하고만 아침을 먹습니다.
한 사람 앞에 국물이 잘박잘박한 무 한 대접에 고등어머리 서너 개씩 먹습니다. 살이라고는 모가지 살 달랑 한 점뿐이지만 고등어 살 중에 모가지 살이 제일 맛있는 것 같습니다. 뭉근히 푹 끓여 흐물흐물해진 뼈도 그냥 씹어 먹습니다. 고소한 고등어 눈을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고, 한꺼번에 6개씩 먹어본다고 좋아들 하십니다. 대목 할아버지는 눈 가장자리는 씹을 것도 없이 수저로 떠 호로록 빨아먹고는, 눈알도 얼마나 푹 고았는지 이빨이 흐벅흐벅 들어가는 것이 하나도 남길 게 없다고 수다를 떨며 드시다가 빠진 이 사이로 눈알이 툭 튀어 나갑니다. 상 위에 떨어진 걸 얼른 주워 드십니다.
아아 맛나다, 아아 맛나다, 하며 밥 한 그릇에 남은 국물을 비벼 기분 좋게 먹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누렁이 먹을 것 없을까봐 조금씩 남겨놓았습니다. 연세 많은 할아버지가 늦게라도 오실까봐 한 뚝배기 따로 떠놓고, 솥단지에 물 좀 붓고 식구들이 남긴 것에 밥을 비벼 아침 내내 코를 킁킁거리며 흘금흘금 쳐다보던 개와 고양이에게 먹였습니다.
어른들이 집으로 돌아간다고 일어설 무렵 연세 많은 할아버지가 오셨습니다. 밥을 다 먹은 줄 알고 노여워서 사랑마루 댓돌에다 담뱃대를 ‘딱딱딱딱’ 소리 나게 칩니다. 얼마나 세게 쳤는지 꽁다리가 깨져버렸습니다.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아침 안 드셨으면 아침 드셔야지요. 밥상을 차리고 화롯불에 뚝배기를 올려 보글보글 끓는 대로 옆에 놔드렸더니, 진작 내 거 남았다고 얘길 하지, 민망스러워하며 맛있게 드십니다. 간다던 어른들이 도로 들어와 식사하시는 할아버지 곁에 둘러앉아, 어르신 이따가 읍내에 가는데 돈을 주시면 담뱃대를 새로 사다드린다는 둥 자기는 담뱃대가 2개니 하나 빌려드린다는 둥 수다들을 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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