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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커플은 들어가는 거게, 나오는 거게?”
“에이, 저건 딱 나오는 모습이네.”
서울 봉천동 어느 골목에서 두 사람이 캔맥주에 과자를 먹으며 앉아 있었다. 20대 시절 초등학교 동창과 나는 지하철 한 정거장 간격으로 자취를 했는데, 호주머니가 심하게 가벼웠던 둘은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시간을 종종 때웠다. 그 동네에는 모텔이 주르륵 들어선 골목이 있었고, 유독 그 근처에 편의점이 많았다. 거의 매일 보는데 할 말이 뭐 있었겠나. 지나가는 연인들을 보며 저분들이 지금 사랑을 하러 가는 건지, 하고 나오는 건지, 확인할 수 없는 알아맞히기를 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친구가 물었다. “근데, 니들은 왜 좋지도 않으면서 좋은 척을 하는 거냐?” 니들? 좋은 척? 잠깐 망설이던 나는 녀석의 등짝을 철썩 쳤다. “그렇게라도 하면 감사합니다 할 것이지, 별 의심은!”
‘정신과 육체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라는 질문이 우문이듯이, ‘마음과 행동 중 뭐가 진짜냐’는 질문도 그렇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는데, 내 행동이 너에게 진실인지 아닌지 어떻게 증명하나. 그러니 우리가 맺는 수많은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가 얼마나 진심이냐보다는, 서로가 그 관계에 맞는 행동에 얼마나 충실하냐이다.
2014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수록된 손홍규의 는 그런 충실함에 대한 이야기로 읽힌다.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도시를 그린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기억을 잃는다.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 거리를 방황하다 발견되면 동사무소에서 가족관계와 주소를 확인해준다. 은행은 이런 사람들을 위해 100만원 한도 안에서 현금을 찾게 해준다. 그러나 가족관계를 확인해주는 동사무소 직원도 자기가 왜 여기 있는지, 돈을 내주는 은행원도 자기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다.
주인공의 집도 그렇다. 찾아간 집에는 아내와 딸이 있지만, 기억은 없다. 서로의 주민등록증으로 관계가 증명되고, 같이 산다. 소설은 예상 가능한 대로 진행된다. 기억이 없으니 감정도 없다. 하지만 부부라면, 부모라면 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그런 역할을 수행하려는 노력들이 벌어진다. 그러던 중 딸이 교통사고를 당한다. 심한 출혈로 죽어가는 딸의 귀에 대고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기억나냐고. 함께 놀이동산에 갔던 때가 있었다고. 즐거웠다고. “죄송해요. 기억이 나지 않아요”라는 딸의 마지막 말에 그는 대답한다.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아, 아빠가 기억해줄 테니.” 물론 그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건 상관없다. 그것이 훌륭한 연기였다는 게 중요하다.
좋은 연기가 좋은 진심을 만들고, 그것이 기억이 되고 현실이 된다. 우리의 현실을 채워가는 것은 확인할 수 없는 진심이 아니라, 보이는 행동이니까. 거기에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간혹 상대의 행동이 가식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짜증을 내기 전에 칭찬부터 하자. 흔히 하는 말로 ‘자기 딴에는 하느라고’ 애쓰는 게 아닌가. 서툰 연기 지도는 나중에 해도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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