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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뜨겁게’ 할 수 있지?”

<연애소설 읽는 노인 >
등록 2015-08-27 05:10 수정 2020-05-03 04:28

“사랑한다는 말은 아는데, 사랑한다는 게 뭔지 몰라.”
이제까지 연애를 안 해본 것도 아닌 사람이, 그것도 대인관계도 매우 좋고 성격도 활발한 이가 이렇게 말했다. 그 고백이 순간 스산했지만, 뒤돌아 매우 반가웠다. 사랑이 그리 알기 쉬운 것이라면 이토록 힘들 리도 귀할 리도 없다. 영화 에서 감우성이 했던 대사가 이랬던가. 너나 나나 13살 때부터 끊임없이 누군가를 사랑해왔어. 그런 우리가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을까. 그 대사는 바로 이런 뜻이었다. ‘나는 모른다, 사랑을.’ 그 말을 듣고 이라는 소설을 떠올렸다. 그 소설에도 비슷한 대목이 있다.

“노인은 그 부분을 큰 소리로 반복해서 읽었다. 그런데 키스를 할 때 어떻게 하면 ‘뜨겁게’ 할 수 있지? 세상에!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대목만 읽으면 매우 낭만적인 책 같으나 아니다. 이 책은 헤밍웨이의 를 떠올리게 하는 인간과 동물의 싸움을 그리며, 그를 통해 현대사회의 문명과 야만이라는 잘못된 구도를 뒤집는다. 칠레의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는 이 소설을 살해당한 환경운동가에게 바쳤다. 그러나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데에는 파괴되는 자연에 대한 경계심이라는 주제보다는 제목의 힘이 컸으리라. 소설 속 주인공 노인은 만 열세 살에 동갑내기와 결혼했다. 어린 부부는 정부의 아마존 개발 정책에 따라 개간지로 들어왔다. 그러나 자연의 힘에 폭삭 망했다. 아내는 두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그는 정부 대신 자신들을 보살펴준 수아르족을 따라 사냥하며 밀림에서 산다. 세월이 흐르면서 거의 사라진 그의 욕망을 깨운 것은 바로 책이다. 우연히 접한 책을 통해 그는 자신이 ‘읽을 줄 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자신이 고독하다는 사실도. 그리하여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등에의 날카로운 침과 같은 ‘사랑’에 대한 책을 읽기로 한다. 바로 연애소설이다.

온갖 쾌락의 기술로 가득한 문명의 눈으로 볼 때 노인은 제대로 된 연애도 사랑도 해본 적 없는 존재다. 그런데 ‘뜨겁게 하는 키스’도 해본 적 없는 그가 연애소설을 이렇게 정의한다. 연인들이 사랑으로 인해 고통을 겪지만 결국은 해피엔딩인 소설, 그것은 인간의 언어로 되어 있으나 인간의 야만성을 잊게 해주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노인의 정의에서 우리는 사랑에 대해 또 하나를 배운다. 사랑이 어렵고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그것이 아름다운지 행복한지를 생각해보라. 그런 것이라면 되었다. 타인의 눈에 볼 때,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그것이 어색하고 서툴다 해도 괜찮다. 그것들은 문명의 손길이라고는 닿지 않는 원시림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참고로 소설 속에서 아마존의 처녀성을 대표하는, 노인이 사는 ‘엘 이딜리오’라는 지명은 ‘낭만적이고 매우 강렬한 애정 관계’를 뜻한다.

김보경 웅진지식하우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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