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가 지망생이 미국 최남단 섬 키웨스트로 고생 끝에 찾아간다. 그가 찾아간 사람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전부 쓰레기일 뿐 나아지지 않더라고요”라며 창작의 고통을 털어놓자 대문호가 건넨 첫 번째 교훈은 이거다. “절대 샘이 마를 때까지 자기를 펌프질해서는 안 돼. 내일을 위해 조금은 남겨둬야 하네.” 이게 무슨 말인가. 그러나 인생을 길게 살아본 사람들, 어떤 분야든 ‘숙련됨’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고개를 끄덕거릴 충고다.
뭐든 잘해보고 싶다. 사람 마음이 다 똑같다. 내가 싫어했던 일도 시간을 많이 쏟아붓게 되면 욕심이 나는데,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 사람과 가장 행복한 시간, 가장 기쁜 경험, 가장 따뜻한 충족감을 느끼고 싶다. 무엇보다 처음 만났을 때 같은 열정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그러나 익숙함과 숙련됨이 다르듯 사랑도 그렇다. 시간이 지나고, 관계가 예상되고, 어제보다 좋은 데이트가 아닐 때, 문득 밀려오는 쓸쓸함은 어쩔 수 없다. 더 나아지지 못할망정 이건 뭔가.
사랑은 글쓰기와 많이 닮았다. 처음에는 열정이 넘치지만 꾸준히 길게 쓰기가 쉽지 않다. 많이 쓴다고 더 좋은 글이 나오지도 않는다. 그래서 작가들을 존경하는 것이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지만, 작가는 단순히 쓰는 사람이 아니라 열정을 유지하며 계속 전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전진의 비밀은 도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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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펴냄)에 그 비밀이 숨어 있다. 저자는 아널드 새뮤얼슨. 헤밍웨이의 추종자가 되어 무턱대고 찾아간 그는 1년 동안 바다 위에서 함께 항해를 하고 낚시를 하고, 글쓰기 가르침을 듣는다. 이 책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충고는 이거다. 낙심하지 말게. 꾸준히 하게. 무엇보다 최상의 소재들을 아껴두게. 그 뒤로 헤밍웨이가 숨긴 말이 들리는 듯하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다네.
연애 좀 해본 이들은 흔히 ‘밀당을 잘하라’고 말한다. ‘밀고 당기기’를 우리는 상대방에게 너무 잘해주지 말라, 긴장감을 유지하라는 뜻으로 듣는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가 된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그 충고 뒤에 느껴지는 두려움이 있다. ‘이 사랑이 오래가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맞다, 그것이 더 두렵다. 파탄 난 연애로 인한 상처는 극복하면 단단한 굳은살이 되지만, 시나브로 사라진 열정은 공기 속에 흩어질 뿐이다.
그러니 사랑에서 중요한 것이 열정의 샘을 유지하는 것이라면, 사실 진짜 밀당은 나와 하는 것이다. 내 감정을 잘 다루고, 내일을 위해 남겨둘 줄 아는 것이다. 그래야 상대에게 무작정 내 애정을 폭풍처럼 들이붓고 나는 할 만큼 했다고 자빠지지 않을 수 있다. 그건 비겁하고 소심한 사랑이 아니냐고? 그럴 수 있겠다. 하지만 내일이 세상의 종말인 것처럼 오늘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영원히 불멸하며 그 사람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큰 욕망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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