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말 속에 의도를 숨기고 알아듣길 바라지. 그걸 알아듣는 게 나에게는 암호를 해독하는 것과 같아.” 영화 에 나오는 대사다. 영화는 절대 풀 수 없을 것 같던 독일군의 암호 이니그마를 해독한 ‘튜링 기계’를 만든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의 삶을 다룬다. 그 기계가 컴퓨터의 전신이고, 애플사의 로고가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먹고 자살한 튜링을 추앙하는 것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외에도 ‘언젠가 이 사람 이야기가 영화화될 줄 알았다’라는 반응이 말해주듯, 그의 삶은 고인에게는 죄송하지만 너무나 흥미로운 요소로 가득하다. 등 튜링에 대한 책들이 대부분 딱딱하고 두꺼운 과학서임에도 베스트셀러가 된 데에는 천재, 동성애자, 암호, 전쟁 등 숱한 주제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해서도 말이다.
튜링에게 사랑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 속 튜링의 대사는 진리다. 우리가 평소에 나누는 말이 암호보다 더 어렵다. 사람들은 “밥 먹었어?”라는 단순한 말에 애정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때로는 화를, 부탁을, 추궁을 숨긴다. 영화에서 엄청나게 머리가 좋은 튜링이 정작 대인관계에서 서툰 것은 사실은 인간들의 우습지도 않은 대화법에 대한 비웃음이다. 그리고 그 장면은 살면서 끊임없이 요구받는 어떤 명제를 떠올리게 한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분명하게 말을 해.’ 요즘 유행하는 연애 코칭 내용의 대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서로 다른 어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전달하려면 어떻게 하나. 한국어를 20년 넘게 아무 문제 없이 써온 이들이 마치 외국어를 배우는 것 같은 마음으로 그런 내용을 진지하게 듣는다.
거기에 비해 암호는 단순하다. 암호는 외부는 모르고 나와 너만 아는 형식에 목적이 있다. 그 형식만 풀고 나면 메시지는 오히려 분명하다. 사이좋은 연인일수록 자기들끼리 즐겨 쓰는 이모티콘이나 은어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너와 내가 같이 좋아하는 것과 같이 싫어하는 것의 교집합이 큰 관계일수록 ‘그렇지?’라는 암호 같은 말도 ‘그렇지!’라고 해석된다. 그러니 연인의 말을 이해하는 노하우를 익히는 게 급하지 않다. 오고 가는 그 수많은 말을 어떻게 매번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상대와 나의 욕구를 이해해가며 해독할 수 있단 말인가. 중요한 것은 너와 내가 공통의 언어를 가지는 것이다. 독일군의 암호가 그렇지 않았는가. 그들 암호의 핵심은 문자와 숫자의 배열 규칙에 있는 게 아니라 ‘하일 히틀러’라는 공통된 맹세에 있었다. 그러니 우리의 대화가 모두 암호라면 나의 연인과의 암호를 풀기 위한 공통된 요소가 무엇인지만 알면 된다. 그것은 무엇일까? ‘사랑해’일까? 아니, 조금만 더 붙이자. ‘너만’ 사랑해. 하일 히틀러는 1인에 대한 충성의 맹세가 아니었는가. 사랑의 언어도 그와 같다.김보경 웅진지식하우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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