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모험가이자 작가인 카사노바. 그가 를 번역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다른 업적으로 충분히 역사에 이름을 남기긴 했다. 욕하면서 부러워하는 카사노바의 엄청난 연애 편력의 비밀은 뭐였을까. 그건 “그 한명 한명을 모두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이다. 그게 어떻게 사랑일 수 있느냐고 카사노바를 비난할 일이 아니다. 사랑에 성공과 실패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첫사랑이 곧 끝사랑이 되는 일은 쉽지 않다. 영화 의 두 부부가 우리를 펑펑 울린 이유 중의 하나도 그것이다. 저와 같은 관계는 마치 신이 소수에게 허락한 특권이어서, 우리는 저런 관계를 가질 수 없을 거라는 절망과 부러움이 그 눈물 안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카사노바처럼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함도 없고, 노부부와 같은 은혜도 받지 못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지나가버린’ 사랑을 무엇이라 말해야 할까. 그냥 버리거나 묻어야 하는 걸까.
“파일럿 피쉬라는 게 있어. 수조가 너무 깨끗하면 오히려 물고기가 살지 못해. 수조에는 건강한 박테리아가 형성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건강한 물고기의 배설물을 통해 만들어지지. 즉, 좋은 상태의 수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처음 넣는 물고기가 중요한데, 이 물고기를 파일럿 피쉬라고 해. 다음 물고기를 위해 먼저 넣는 거지. 심한 경우엔 건져내어 버리기도 하고.”
섬세하고 서정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일본 소설가 오사키 요시오의 장편소설 . 주인공은 어느 날 밤 19년 만에 걸려온 옛 연인의 전화를 받는다. 내일이면 볼 사람처럼, 지금 뭐하고 있느냐는 일상적 질문에 수조 물갈이를 하고 있다는 일상적 대답을 하던 그는 ‘파일럿 피쉬’에 대해 설명하게 된다. 이 말은 어이없는 잘못으로 사랑을 놓쳐버린 자신에 대한 사과와 자책이기도 하지만 지난 사랑에 대한 감사이기도 하다. 나라는 수조에 너라는 물고기가 들어왔었기에 나의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이 소설에는 두 주인공의 현재진행형 사건은 없다. 둘은 그와 같은 통화를 하고, 만나서 스티커 사진을 한 장 같이 찍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말을 나눌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음을 우리는 안다. 물론 지나간 사랑이 인생의 수단이거나 경력은 아니다. 결국 각자의 삶은 각자가 사는 것이고, 우리는 원치 않게 잔인한 일을 하기도 하고 겪기도 한다면, 그 와중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뭔가. 적어도 옛사랑이 감사할 수 있는 내 인생의 파일럿 피쉬여야 하지 않겠는가. 김보경 웅진지식하우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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