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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길을 잃으면 무조건 건물 밖으로 나가라”는 말이 있다. 안에서는 언제까지고 길을 찾아 뱅글뱅글 돌 수밖에 없는 이 낯선 건물은 그나마 밖에서 봐야 구조가 잡힌다는 뜻이다. DDP에서 길을 잃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한데 그 점에서만은 “DDP는 유동성과 복합성을 지닌 현재와 미래의 삶을 표현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는 자하 하디드의 건축의 변을 실현했다고 볼 수도 있다. 책에서는 DDP와 광화문광장, 서울시 새 청사 등을 이야기하며 “디자인은 디자인을 요청하고 생성하는 사회의 문제”라고 결론짓는데 우리가 굳이 건물 밖으로 나가 이런 건축을 발주한 우리 사회를 돌아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UFO 같은 건물이 착륙한 곳은 어디인가? 책은 “근대가 아직 오지 않은 곳, 개발에 관한 한 위험 감수를 당연히 여기는 겜블러들의 도시”라고 규정한다. 지난 5월 충남 아산의 7층 높이 오피스텔이 내부 마감 공사를 앞두고 갑자기 기울었다. 며칠 전에는 광주 중흥동의 아파트에서 지하 기둥 2개가 부서지면서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현상이 있었다. 책임을 질 이유도 근거도 없는 ‘건설업자 김 사장’이 쌓아올린 도시 곳곳은 잠실 제2롯데월드 공사 현장처럼 ‘싱크홀’이라는 구멍을 내고 있다.
건축가이면서 공학자인 함인선은 책에서 “공학적 사고의 원인은 안전율의 부족 때문이고 안전율의 부족은 돈의 부족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위험진단시스템 유지 비용보다 사람 목숨값이 싼 사회에서 붕괴는 예고되고 반복된다. 싼값으로 적당히 사고가 일어나도록 설계된 비행기를 타고, 그런 집에서 살며 개발 이익의 부스러기를 나눌 때, 소비자도 건설업자도 암암리에 ‘리스크 감수’를 합의했다는 이야기다.
이미 근대를 넘어서는 길을 찾고 있는 인문학적 입장에서는 “너무나 세속적인 이 근대의 논법을 부인하면 절대로 우리 사회의 사고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건축가의 이의 제기나 “방법은 근대의 핵심 요목인 과학과 인간성을 제대로 도입하는 길”이라는 주장이 좁거나 막다른 길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안전에 관한 모든 규제는 선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책의 주장은 귀기울일 법하다. 1911년 미국 봉제공장 화재 사건 때 출입문이 잠겨 있어 공장에서 일하던 소녀 146명이 맨해튼 도로 위로 하염없이 떨어져 죽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공공안전위원회가 생겨났고 아직까지는 그보다 더 큰 건물의 인명 사고는 없었다. 한국도 사람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미리 기꺼이 비용을 치를 수 있을까? 지은이는 “아닐 확률이 더 많다”고 추측한다. 우리는 사고가 일어나면 사회적 비용을 얼마나 추가 투입해야 하는지 솔직히 토론하고 합의하는 대신 직업윤리, 안전불감증, 국민의식 수준처럼 범죄의 원인을 인격화한다. 근대적 개발 논리가 낳은 폐해에 전근대적 수술칼을 들이미는 한 삼풍은, 경주는, 세월호는 무한 반복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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