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지스는 새되게 내지르는 고음으로 유명하다. 예로부터 이런 창법을 일컫는 팔세토(falsetto)라는 말은 ‘틀린, 가짜의’라는 뜻인 ‘false’에서 비롯한다. 가성으로 내는 높은 소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비지스의 초창기 곡들은 팔세토 창법을 쓰지 않고 보통 높이의 소리로 부른다. 팔세토는 어느 시점부터 그들이 의도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높이의 아이디어였던 셈이다. 찌르는 듯 높은 목소리는 디스코 특유의 인위적이고 신나는 분위기에 잘 들어맞았으며 그들의 팔세토는 큰 인기를 누렸다. 조용필의 명곡 에서도 마지막에 비지스의 영향을 받은 가성의 고음부가 나온다. 아, 이 부분은 정말 신난다!
얼마 전 클래식 음악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듣는 자리가 있었는데 독일 피아니스트 마르틴 슈타트펠트가 연주한 바흐의 이 나왔다. 슈타트펠트의 신선한 해석은 엄청난 충격을 몰고 왔다고 한다. 바로크의 즉흥성이라는 개념을 그는 독자적으로 해석해 어떤 부분에서 한 옥타브를 높여 연주하기도 한 것이다.
인체의 높이를 가장 극적으로 변화시키는 아이디어는 아마도 하이힐일 것이다. 하이힐은 발뒤꿈치 아래 높은 굽을 덧대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인체를 밀어올리는 신발이다. 그 뾰족하고 위태로운 구조로 인해 하이힐은 무척 섹시한 느낌을 준다.
또 요즘은 코의 높이가 높을수록 좋다는 아이디어가 팽배해 있어서 코높이 수술이 각광받는다. 나는 낮은 코야말로 사랑스러움의 정수라고 생각하지만, 살펴보았듯 높이에 대한 아이디어 또한 시대의 유행이고 산물이니 내가 뭐랄 건 아니다.
그러나 또 다른 높이에 대해선 한마디 하고 싶다. 서울 성산대교 옆에선 물 한 줄기가 하늘을 향해 어마어마한 높이로 치솟는다. 2002 월드컵을 기념해 202m라고 한다(200.2m여야 하는 것 아닐까?). 기존 최고 높이였던 미국 파운틴힐 분수보다 32m 높은, 세계 최고 높이의 분수란다. 생각해보라. 63빌딩 높이에 육박하는 물줄기가, 2002년 월드컵을 상징하며, 아무런 미적 감흥도 없이, 어마어마한 비용을 삼키며 치솟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높이’로.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분수(사진)가 한심하다.
부실공화국인 이 나라에서 온 국민의 걱정을 먹으며 자라고 있는 서울 송파구 제2롯데월드의 예정 높이는 555m로 한반도에서 제일 높고 세계에서는 6번째로 높다고 한다. 해운대에 411m짜리 관광리조트가 다 지어지면 그것도 세계 몇 위가 된다더라…. 마천루의 높이 경쟁이라는 것도 이제는 참 ‘개발도상’스러운 아이디어다. 롯데월드가 높아질수록 옆에 있는 석촌호수의 수면 높이는 낮아지고 송파구의 도로도 이곳저곳 내려앉고 있다고 한다. 불안정하고 위태로워서 섹시하다는 건 하이힐 얘기였다.
김하나 저자·카피라이터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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