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멋진 뮤지션이 애인 없는 이유?

결혼할 때 모두 물었던 말 “돈 잘 버나”, 나 역시
‘예술가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으니
등록 2014-07-09 15:13 수정 2020-05-03 04:27
2013년 서울 홍익대 앞에서 열린 잔다리페스타 공연에서 관객들이 열광하고 있다. 잔다리페스타 페이스북 갈무리

2013년 서울 홍익대 앞에서 열린 잔다리페스타 공연에서 관객들이 열광하고 있다. 잔다리페스타 페이스북 갈무리

‘나는 뮤지션과 결혼했다’ 칼럼을 시작한다고 했더니 누가 그랬다. “사람들이 과연 그걸 궁금해할까?”

그 말에 잠시 쫄았지만 꿋꿋이 갈 길을 가련다. 남편을 만나 결혼하기 전까지 적어도 나에게 뮤지션이라는 직업은 흥미진진한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어쩌면 그 덕분에 결혼까지 하게 됐기 때문이다. 사실 뮤지션이라는 직업을 떠나 무언가 작품을 창조해내는 예술가의 삶이라는 것, 그 자체가 경외의 대상이 아닐까. 쿨럭. 너무 거창했나. 어쨌든 남편의 주변에는 뮤지션뿐만 아니라 미술을 하는 사람, 글을 쓰는 사람, 영화를 만드는 사람 등 다양한 예술가 집단이 있다. 그들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며 느꼈던 ‘무언가’를, 기록을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그냥 흘려보내기는 좀 아깝지 않은가.

지난해 가을 나의 결혼 소식을 전하는 과정에서 많은 질문을 받았다. “예술가는 성격이 예민하거나 괴팍하지 않니?” “생활 패턴이 달라서 힘들지 않니?” 류의 질문도 있었지만 특히 많이 하는 질문은 “남편이 돈은 잘 벌어다주니?”였다. 예술가들은 으레 가난할 거라는 생각과 그 길을 스스로 택한 사람이 집안 살림에 신경이나 쓰겠느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다. 하나만 묻자. 우리 집 가난하면, 당신이 도와줄 건가?

가난한 예술가가 많은 건 사실이다. 얼마 전 나보고 주변에 소개팅할 사람이 없는지 묻던 남편이 허탈한 목소리로 “그쪽에서 소개팅 못하겠대”라고 말했다. 남편은 자신과 가까운 후배 뮤지션들이 하나같이 잘생기고 성격도 좋은데 왜 애인이 없는지 모르겠다며 누군가를 소개해주고 싶어 했다. 나는 “아니, 왜? 혹시 숨겨둔 애인이 있었던 거 아냐? 아니면 음악에 집중하고 싶대?”라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나를 뜨끔하게 만들었다. “아니, 소개팅할 돈이 없대.”

얼마 전에는 최근 결혼한 미술가 친구 부부와 잡담을 나누다 혼인신고 얘기가 나왔다. 그 부부가 아직 혼인신고를 못했다고 하길래 “혼인신고를 최대한 미루는 게 요즘 트렌드긴 하다”고 맞장구를 쳤더니 전혀 다른 얘기가 튀어나왔다. 정부에서 나오는 예술인 지원금을 결혼한 사람은 받을 수 없다는 거였다. 이들은 “지원금을 계속 받으려면 혼신인고를 최대한 미뤄야 한다”고 했다.

돈이 없어 소개팅도 못하는 젊은 인디 뮤지션과 법적 부부로 인정받기도 힘든 미술가 부부라니. 내가 그들의 생활고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자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그런 것에 별로 개의치 않으니 괜한 동정 하지 말라고. 갑자기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아, 그렇구나. 결국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인디 뮤지션을 남편으로 둔 나에게 보내는 썩 달갑지 않은 동정, 이것을 나도 똑같이 그들에게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자칫 예술가들이 가진 위엄과 고결에 대해서는 잊고 그들이 얼마나 가난한가에만 초점을 맞추곤 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채우는 건 자신이 선택한 인생에 대한 자긍심과 여기서 나오는 무한한 창조적 에너지다. 이들에게는 금전적 욕구보다 예술적 욕구가 더 클 뿐이다. 이제 예술가들을 만난다면 “돈은 얼마나 버세요?”가 아니라, “요즘 어떤 작품을 만드세요?”라고 묻는 게 어떨까.

S기자*기자계에 보기 드문 미모를 ‘가졌으나’ 뮤지션과 결혼한 여기자가 연재하는 이 칼럼은 3주에 한 번 찾아옵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