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70살인데도 항상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어린 날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은 달고 맛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손맛을 떠올리며 내 손으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지만 무엇인가 항상 2% 부족한 맛입니다. 나는 효녀여서 항상 어머니를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어머니가 만들어준 음식이 먹고 싶어서 어머니 생각이 났던 것 같습니다.
내 어린 시절은 한국전쟁 직후라 돈은 귀했지만 산과 들에 먹을거리가 풍성했습니다. 내 고향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뇌운리 어두니골은 동화에 나오는 시골처럼 산 좋고 물 좋은 자그마한 동네였습니다. 강가에 밤나무가 줄지어 서 있던 우리 집 뒤로는 뒷동산이, 강 건너엔 높은 산이 있었습니다. 길게 엎어지면 앞산에 코가 닿겠다고 이웃마을 위부 사람들이 놀리기도 했습니다.
밤나무 밑에는 이른 봄 싱아부터 많은 나물들이 나고, 뒷동산엔 고사리·취나물·더덕 같은 먹을거리가 많아서 가기만 하면 금세 한 다래끼씩 뜯어 올 수 있었습니다. 앞강에는 쏘가리·메기 등 각종 큰 물고기들이 많았습니다. 한번은 어른들이 너무 큰 뱀장어를 잡았습니다. 사람들은 수삼이라고 좋아하는데 어린 내가 볼 때는 뱀이 변신한 것 같았습니다. 식구들이 뱀을 먹을까봐 졸라서 팔았던 적도 있습니다.
우리 집은 일이 많았습니다. 주업인 농사 외에 부업으로 소, 돼지, 개, 고양이, 닭, 오리를 키웠습니다. 그때는 강물을 먹고 살았습니다. 모든 음식 재료를 일일이 강에 가서 씻어와야 했습니다. 500m 넘는 완만한 언덕을 오가며 물을 긷는 일은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나는 6살 때부터 어머니를 도와 나물을 씻어 나르고 음식을 만들고 함께 일했습니다. 아니 그전부터 심부름을 한 기억이 납니다. “순예야, 고추 서너 개만 따오너라.” “엄마, 서너 개가 어떤 거야?”라고 물으면 어머니가 손가락을 세 개 펴들고 이만큼이라고 합니다. 잊어버릴까봐 손가락 세 개를 펴들고 가 고추를 손가락에 대보고 그만큼만 따온 기억이 납니다. 가을이면 학교를 작파하고 밤을 주워야 했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은 어른들이 모두 밭에 나가 집에서 동생을 보느라 학교를 못 가서 어머니가 야속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항상 요술처럼 음식을 만드는 어머니가 신기했습니다.
아버지는 큰오빠와 작은오빠와 함께 별이 반짝이는 새벽부터 일어나 나무를 하고 소에게 먹일 풀을 베고 밭일을 했습니다. 밭은 퇴비를 많이 줘서 팔뚝만 한 옥수수가 한 대궁에 세 개씩 달리고, 붉고 길쭉한 올감자는 아버지 장뼘이 넘도록 잘되었습니다. 몇천 평 되는 옥수수밭 가장자리에 배추씨도 뿌리고 오이도 여기저기 심어 봄부터 가을까지 사람뿐 아니라 짐승들까지 채소를 실컷 먹을 수 있었습니다. 마당가 채소밭엔 푸성귀가 나고, 울타리에는 호박이 열립니다. 지붕 위 하얀 박도 때로는 반찬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상추나 열무 솎은 것을 다듬어 부엌에 한 다래끼씩 갖다놓으면, 그걸로 생절이를 해 밥을 비벼 먹었습니다. 배가 든든해야 힘든 일을 할 수 있다고 어머니는 바깥일 하는 남자들을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끼니때마다 아궁이에 불을 때 가마솥에 나물을 삶고 데치고 볶고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음식이 완성될 때까지 부엌 앞을 떠나지 않고 정성스레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때맞춰 아궁이의 불을 화로에 옮기지 않으면 음식이 타거나 넘쳐서 음식을 망쳐버리기 때문입니다. 화롯불은 중요한 연료입니다. 화로에 재를 반쯤 담고 큰 숯을 올려 꼭꼭 눌러놓고 아궁이의 불을 모두 담고 그 위에 다시 재를 덮어 꼭꼭 눌러놓으면 화롯불이 꺼지지 않고 오래갑니다. 그렇게 만든 화롯불에 된장찌개도 끓이고 자질구레한 반찬을 만듭니다.
철 따라 한 번만 먹던 자연 간식이 있었습니다. 계절 따라 즉석 반찬이 달랐습니다. 철 따라 끓이는 죽도 맛있었습니다. 철 따라 한 번만 먹던 떡도 있고 밥도 있습니다. 눈 감으면 거기 그곳에 변함없이 철 따라 꽃이 피고, 맛있는 음식이 보이는 듯합니다. 오늘도 어머니가 해주시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고향으로 떠나볼까 합니다.
전순예 주부*필자 전순예씨는 1945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났다. 남편 일 때문에 베트남 하노이에서 6년째 살고 있다. 청소년문학상에 도전하며 틈틈이 글을 써왔지만 블로그도 없고 SNS도 하지 않는 그는 오프라인의 그물을 통해 필자로 발탁됐다. 특별한 양념보다 재료의 맛을 최대한 끌어내는 조리법이 특징인 강원도 요리를 정감 있게 복원한다. 격주로 연재된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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