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의 언어에서 ‘대중’이 의미 있는 주체로 등장한 때는 2000년대 초반으로 기억한다. 그저 많은 수의 사람을 뜻하는 구태어. 소비로만 취향을 드러내는 탈계급적 존재들에게서 “내재적 삶의 의지의 소유자 또는 자신을 외부 세계에 관계하고 변화하려는 충만한 역능의 담지자”(들뢰즈)라는 의미를 건져낸 것도 그즈음이다. 2002년 오노 사건으로 반미 의식이 퍼져나갈 즈음 6월의 길거리를 월드컵 응원단이 달궜다. 사이버공간뿐 아니라 오프라인으로도 자율적으로 쏟아져나오는 그들. 능동적이고 참여적인 군중. 은 근대를 배경으로 출현한 대중이 근대를 벗어나는 ‘대중의 탈근대적 현상’에 주목한다.
김성일씨가 자신의 고려대 사회학과 박사 논문을 토대로 쓴 책은 지금까지 근대의 다양한 순간에서 주체로 호명돼온 ‘대중론’을 정리했다. 계기는 물론 2008년 ‘미국산 수입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다. 진보와 보수 어느 틀에도 묶여 있지 않던 사람들이 권력의 한복판 서울 광화문 거리로 쏟아져나와 제도와 비제도, 정치와 탈정치의 경계를 자유롭게 횡단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민중·시민·민족이라는 가상의 공동체에 갇혀 있을 때는 대중결집과 집단행동이 억압과 착취라는 외적 조건의 영향을 받아 사후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사태를 진단하고 스스로 자원을 동원하는 능력을 가진 주체, 그들이 바로 대중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를 벗어나서, 옆에 함께-선 사람에 감응하여 일정한 방향으로 함께 움직이기 시작할 때, 감응의 전염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할 때, 우리는 그 흐름을 대중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이진경의 말 그대로다.
그러나 대중의 어떤 얼굴은 에 열광하고 황우석을 옹호하며 ‘개똥녀’의 신상을 터는 등 편협한 애국주의와 자폐적 민족주의, 왜곡된 포퓰리즘의 표정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도 하다. 무한경쟁에서 밀려난 집단적인 피해 의식의 변종도 대중이 공유하고 있는 생활감각이라는 점에 대중연구의 어려움이 있다. 책은 대중에게 선험적 성격이나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오로지 사건을 만드는 실천, 곧 집단행동을 통해 특정한 주체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유동적이고 형성 중인 집단,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실천을 통해 늘 새롭게 구성되는 집단이 바로 대중이라는 것이다.
책의 목표는 노동자에서 대중으로, 시민에서 쓰레기로 빠르게 편입돼온 삶의 조건들을 통해 대중 형성의 동학을 살펴보자는 것이다. 책은 결론적으로 “대안적 사회를 꿈꾸게 하는 정치적 기획으로서의 대중연구”를 주장하지만, 10년 동안 새로운 주체의 뜻하지 않은 생활정치 사건들을 이미 목도해온 독자는 바로 이 기획을 구체화하는 것에서 책이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남은주 문화부 기자 mifoc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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